ADVERTISEMENT

박영미. 장필순. 장혜진 여가수 3명 새음반 발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좀처럼 역량있는 여가수들의 음반을 찾기 힘든 요즘이다.

지난해 이소라의 음반이 홈런을 치고 최근 여성로커 리아가 신나는 얼터너티브로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가요계에서만은 절반에 훨씬 미달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은 노래보다 육체가 앞서는 남성댄서 중심의 댄스음악이 판치는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H.O.T.클론.박진영.김건모등 인기남자가수들이 일대 각축전을 벌이는 틈새를 비집고 가창력 있는 여가수들이 잇따라 음반을 내 가요팬들을 고무시키고있다.깨끗한 고음과 탁월한 발라드 소화력을 자랑하는 장혜진.박영미가 각각 싱글과 앨범을 발표했고 속삭이는 듯 노래부르는 여성포커 장필순도 오랜만에 5집을 내놓았다.

<박영미>

박영미는 여러 장르를 넘나들어 컬러를 찾기가 어려운 가수에 속했었다.그러나 이번 음반은 첫곡부터 비트가 탁탁 끊어지는 역동적인 펑키 사운드를 가미한 리듬 앤 블루스가 특징. 록발라드부터 아카펠라까지 다양한 장르를 한데 섞었던 95년 3집 이후 선보인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파혼'.제목부터가 심상잖다.

“그동안 여러 장르를 거쳤지만 내게 꼭 맞는 장르를 찾기가 어려웠어요.그런데 이번에 정말'내 노래다'싶은 곡을 만났고 그러다보니 장르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게 된거죠.” 그녀를 반하게 한'파혼'은 이기찬의'플리즈'를 지은 신인 여성작곡자 이현정이 창작했지만 그녀도 스스로 작곡 과정에 직접 참가했다고 한다.1,2집 시절엔 신해철등 쟁쟁한 스타들이 지어준 곡을“그냥 주는 대로”부르는데 그쳤지만 3집부터'내게 맞는 나만의 노래'생각이 간절해졌고 4집에 이르러 조그만 답을 내게됐다는 것이다.주전공인 리듬 앤 블루스에 펑키.힙합등을 개성껏 녹인 형태가 그것.“초기시절엔 머러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같은 화려한 팝발라드를 좋아했지만 흑인음악을 접한 후로는 단순하면서도 귀에 와닿는 곡이 진짜 노래란 것을 깨달았어요.” '파혼'은 제목과 달리 약혼한 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남녀의 만남과 별리를 그린 노래로“부담스런 연애보다는 심플한 친구관계가 낫다”는 그녀의 남녀관을 보여준다.메시지처럼 리듬도 대단히 경쾌하다.'시작을 위한 끝''아무 말 하지마'와'서툰 사랑'등 전반적으로 밝고 리듬감 넘치는 곡들이 많아 그녀의 앞으로의 행로를 예감케한다.

<장필순>

크게 내지르는 목소리가 절대다수인 가요계에서 장필순은 속삭이는 포커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여가수다.약간은 허스키한 그녀의 음색에는 스트레스에 찌들어 날카로와진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풀어 헤쳐주는 묘법이 있다.

그녀의 매력은 힘이나 성량보다는 잔잔하지만 진실이 느껴지는 담백함이다. 올초 나온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과의 합작앨범에서 진득하고 그윽한 목소리를 선보인 그녀가 반년만에 다시 다섯번째 독집을 발표했다.

4집 이후 2년만에 나온 이 독집은 원래 최신 유행장르인 모던록을 도입,그녀로서는 진폭 큰 변신을 시도할 예정이었다.그러나 음반이 대강 완성된 지난 5월 신보를 미리 소개하는 콘서트를 들어본 선배 조동진으로부터“포크로 돌아가라”는 권유를 듣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는 것. 잠시나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언덕이어선지 이번 음반에서 그녀는 꾸밈없는 정공법으로 노래를 불러 포크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타이틀곡'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와'첫사랑'은 정통 포크 창법이 헤어졌던 통기타와 재혼한 느낌을 주고 록비트를 섞은'스파이더맨''빨간 우체부 아저씨'등도 포크록의 테두리를 넘지 않는다.퓨전에 접근했던 3.4집과 비교해 볼 때 5집은 데뷔15년을 맞은 통기타 포커로서 자기위치를 결산한 작품이란 느낌을 준다.오랜 파트너인 프로듀서 조동익의 편곡이 안정감 있게 그녀의 목소리를 받쳐준다.

그녀는 오는 19.20일 대구 동아백화점 콘서트(053-780-2273)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신보 기념콘서트에 나설 계획이다.

<장혜진>

장혜진의 입에서 깨끗한 고음이 파워풀하게 울려퍼지는 것을 듣고 나면 그녀의 작은 체구에 갑자기 압도된 느낌을 가져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원래 힘차고 밝은 노래를 즐겨 불렀던 그녀는 지난해 4집에서 돌연 좀 무겁고 어두운 느낌의 곡들을 다수 발표했었다.리듬 앤 블루스 계열의 우울하고 애상적인 노래들이 주종을 이룬 이 음반에서 그녀는 만만찮은 흑인음악 소화력을 보여 음악적 성숙을 과시했다.

그러나 근1년만에 낸 신보는 다시 밝은 느낌의 당도(糖度)높은 곡들로 돌아와있다.“얽매이기를 싫어해 음반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편이에요.개인적으론 리듬 앤 블루스중 밝은 노래를 좋아하지만 이번은 발라드 계통의 록까지 다양하게 차려봤어요” 신보'모스키토'는 노래가 3곡(또 다른 한곡은 연주곡)뿐인 싱글.올 연말께 나올 5집에 앞서 마련한 이 싱글엔 다양함을 좋아하는 취향에 맞춰 록발라드('꿈의 대화')와 팝발라드('나는요'),그리고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리듬 앤 블루스에'뽕짝'(트롯)을 섞은 '왜'가 각각 들어있다.노래마다 힘있는 고음과 달콤하면서 언뜻언뜻 애상적인 그녀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다.

특히'꿈의 대화'는 영화'깡패수업'에서 깡패 박중훈과 사랑에 빠졌다가 버림받는 비련의 여성 하나코의 테마곡으로 워낙 느낌이 좋아 프로듀서 김형석이 지휘하는 14인조 관현악단의 연주아래 새롭게 불렀다.

“록발라드에 바이올린.첼로등 현악기를 배경으로 깐 것은 처음인데 아주 곱게 잘 나왔어요.현의 아름다움에 눈뜬게 이번 음반의 소득인 것 같아요.” 글 강찬호.사진 김형수.신인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