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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이 세계인 사랑 받으려면 스타 셰프 발굴 육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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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 미식가들에게 최고의 요리 안내서를 물으면 예외 없이 첫 손가락에 꼽는 프랑스의 미슐랭 가이드. 1900년 창간호를 낸 미슐랭 가이드는 올 해 ‘제 100호’를 발간한다. 100여년동안 세계 최고의 요리사와 미식가들에게 바이블로 여겨졌던 미슐랭 가이드의 6대 사장 장 뤽 나레(48)를 지난주 파리의 미슐랭 가이드 본사에서 만났다. 나레 사장의 인터뷰 룸에는 이름에 걸맞게 커피도 종류별로 갖춰져 있었고 과일 주스와 생수 과자 등이 가득했다. 커피향이 은은한 인터뷰룸에서 한 시간동안 미슐랭의 전통과 명성의 비결,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미슐랭 가이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다. 비결은 뭔가.

“미슐랭 가이드의 명성과 권위는 그저 오래 되서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첫째 기본은 신뢰다. 미식가들 독자들이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레스토랑 수석 주방장들이 인정해야 한다. 수십년동안 이를 위해 많은 것을 해왔다. 맛에 관한한 전문성을 충분히 갖고 있는 인스펙터를 뽑아 6개월 이상 교육 기간을 거친 뒤 평가를 맡긴다. 그들의 신분을 절대로 노출하지 않는다. 신분이 노출되면 그때부터는 객관적인 평가가 안된다. 음식점에 가기전에 해당 업소에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인스펙터들이 음식점을 찾아가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실비로 보상한다.”

-요즘은 신문이나 TV 인터넷 등에서 음식점 소개 코너가 무수히 많다. 미슐랭만의 차별화 포인트는 뭔가.

“여기저기에 음식 안내가 많아져 미식이라는 주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웃음) 우선 우리에게는 셰프가 대단히 큰 평가 기준이다. 훌륭한 음식점은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 알랭 뒤카스라든가 조엘 로뷔숑 같은 훌륭한 셰프가 최고의 음식점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셰프를 평가하고 또 발굴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셰프를 평가한다는 것은 아무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 못지않은 전문성과 함꼐 앞서 말했듯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핵심이 될 것이다. 100년을 이어온 역사와 공정성,전문성에서 우리는 확실하게 다른 위치에 있다. 인터넷 매체 또는 TV 신문 잡지 등이 수없이 많은 음식 정보를 제공하지만 모두 무료다. 비싼 돈 주고 미슐랭 가이드를 사보는 이유는 우리의 다른 점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바로 신뢰와 전문성이 차이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쓰리 스타 음식점을 몇 군데 가봤는데 차이를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좀 실망스러운 곳도 있었다. 별을 주는 기준은 뭔가.

“파리 로댕 박물관 옆에 있는 아르페주(3스타)를 보자. 이 집은 야채가 전문이다. 그 집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지만 매일 신선한 재료로 다양하게 만드는 야채 요리는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런 전문성과 창의성을 높이 평가한다. 맛이라는 건 혀에서만 느끼는게 아니다. 여러 감각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어야하고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게 독창성이다. 미슐랭 가이드의 쓰리 스타는 음식 업계에서는 최고의 영예다. 그러나 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는 다르다. 레지옹 도뇌르는 한 번 받으면 평생 가지만 미슐랭 쓰리 스타는 그 해에만 해당된다. 영원한 쓰리 스타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꾸준히 개발하고 창의적인 노력을 하지않으면 그 다음해에는 추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셰프들의 노력을 알아보기 위해 매년 인스펙터들이 크로스 체크를 한다. 바로 미슐랭 독자들과 미식가들에게 좋은 맛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또 재료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핀다. 훌륭하고 신선한 재료를 쓰지 않는 음식점은 자격이 없다.”

-지난해 도쿄의 음식점들이 무더기로 별을 받은게 화제가 됐다. 왜 그렇게 높이 평가했는가.

“지난해 도쿄에 2주동안 머물렀다. 그 때 맛 본 일본 음식은 내게는 매우 아름다운 모험이었다. 2주 내내 정말 행복했다. 우선 도쿄에는 16만여개의 음식점이 있었다. 파리를 미식가 도시라고들 하는데 도쿄는 놀라울 만큼 엄청난 레스토랑의 물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 음식은 퀄리티도 매우 뛰어났다. 셰프의 수준도 어느 도시보다 훌륭했고 무엇보다 그들만의 고유 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잘 이뤄지고 있었다. 몇 대째 수백년을 걸쳐서 내려오는 기술과 전통은 따라잡기가 힘들다.

특히 내가 높이 평가한 것은 전문성이다. 파리의 일본 음식점에 가보면 초밥,회,야끼도리 등 여러 메뉴가 함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그런 줄 알았는데 대부분 내가 가본 곳은 스시 전문점 회 전문점 야끼도리 전문점 도시락 전문점 우동 전문점 등으로세분화 돼있었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특성때문에 일본 음식점의 상당수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당연히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일식을 비롯해 태국 음식 등 아시아 음식이 전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다.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사실 유럽에서 보면 가장 성공한 건 이탈리아 음식이 아닌가 싶다. 어느 동네 가든 피자집은 다 있지 않나.(웃음) 아시아 음식의 경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잘 채워준게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 일본 중국 태국 음식 등이 모두 비슷하다. 음식은 곧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 체험 욕구를 음식점의 엑소틱한 분위기와 독특한 맛에다 현지인들의 취향을 적절히 조화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세계 주요 도시를 돌다보면 음식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이자 산업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듯 하다. 왕실이 자국 요리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태국이 대표적인 것 같다.

“중요한 지적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건 역시 장인 정신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본을 빼놓고 기술적ㆍ산업적인 측면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런 기본이 결여된 상태에서 산업만 강조하다보면 불량품이 생겨 부작용이 일기도 한다. 일본에서 프랑스 음식점을 몇 번 가봤는데 몇몇은 좋았지만 전혀 프랑스 음식 답지 않은 곳도 적지 않았다. 무분별한 수출은 안하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태국 음식도 마찬가지다. 잘 된 곳이 상당수이지만 퀄리티가 떨어지는 곳도 적지않다. 양적으로 너무 수출에 치중하다보면 그런 부작용이 생기는게 아닌가 싶다. 때문에 첫 단추를 잘 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파리의 일본 음식점도 상당수가 일본인이 경영을 하지 않고 있어서인지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인증제도라는걸 도입했는데, 사실 정부가 음식점 인증을 해준다는게 좀 낯설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음식과 문화를 지킨다는 측면에서는 필요한 일이라고생각된다. ”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나. 있다면 어떤 요리가 마음에 들었는가. 또 한국 요리가 서구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보는가.

“한국 음식 많이 먹어봤다. 그런데 한국 음식 하면 일반적으로 서양사람들에게는 코리안 바베큐 이미지 하나다. 좀 더 다양하게 여러 음식이 소개됐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일부 음식점의 경우 오히려 초기에 서양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줬을 수도 있다. 생각해봐라. 처음 갔던 한국 음식점이 맛도 그저 그렇고 음식점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면 한국 음식에 대한 이미지, 또 한국이라는 이미지에 상당한 편견을 심게 된다. 그러니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해서 음식을 엄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가 가본 중에 인상깊었던 한국 음식점은 물론 일식과 퓨전이지만 뉴욕에 있는 '모모푸쿠 고'가 있다. 미슐랭에서 별 두개를 받았다. 매우 훌륭한 퀄리티다. 외국에 내는 한국 음식점의 경우 그 나라 분위기와 그 나라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게 상당히 중요하다. 물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체험으로 외국 음식점을 가지만 너무 낯설거나 황당하다면 곤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훌륭한 셰프의 육성이다. 물론 한국에도 훌륭한 쉐프가 있지만 아직까지 국제적인 수준에는 닿지 않은 듯 싶다. 한국에서도 스타 셰프,한국의 조엘 로뷔숑이 나와야한다.”

-서양에서 아시아 음식이 자리 잡으려면 와인과의 매치가 필수 요건이 아닌가 싶다. 먹어본 한국 음식 가운데 와인과 잘 어울릴만한 요리를 추천한다면.

“갈비는 레드 와인과는 대체로 다 잘 어울린다. 그리고 다른 음식들도 피노 누아 품종과 잘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꼭 와인이 아니더라도 한국 음식에 잘 맞는 한국의 전통주를 잘 개발해서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사케라는 걸 언제 서양 사람이 마셨나. 일본 음식과 유난히 잘 어울리니까 마시기 시작한거다. 우리는 보통 와인을 설명할때 음식과 와인의 하모니 또는 혼인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마도 가장 잘 맞는건 그 나라 술과 그 나람 음식이 아닐까 싶다. 와인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 술을 잘 포장해서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미슐랭은 최근 도쿄와 홍콩 마카오 등 아시아 도시 음식점을 평가했다. 서울의 음식점을 해볼 계획은 없는가.

“아직까지는 없다. 아시아쪽은 아주 흥미로운 지역이라서 도쿄와 홍콩ㆍ마카오 등을 펴냈다. 그런데 음식은 국가 발전 수준이 아니라 그 나라 , 그 도시 사람들이 얼마나 음식에 열정을 갖고 있느냐가 우리로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도쿄에 가보니 정말 식도락가들 그보다는 음식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곳에서는 미식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서울도 머릿속에는 있다.”

-미식가들과의 교류가 많았을텐데 프랑스를 포함해 전세계 유명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가.

“많지만 우선 배우 제라르 드파르 디외는 대표적인 미식가다. 식사를 워낙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본인이 직접 음식점을 경영한다. 알다시피 샤토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와인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는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음식점에 대해서도 박사급으로 잘 안다. 미국 배우 로버트 드니로도 이름난 미식가다. 나와도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몇차례 만났는데 그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즐긴다. 특히 일본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프랑스 음식점을 소개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 걸 보면 프랑스 음식을 즐기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웃음) 정치인 중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프랑스 전통 요리를 즐기는 편인데 송아지 머리 고기 요리를 특히 좋아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깔끔한 요리를 즐기는 편인데 브리스톨 호텔 프랑스 요리집을 좋아한다.”

-직업상 외식을 주로 하게 될 것 같은데 집에서는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가.

“아주 불행한 일이지만 집에서 식사할 시간이 거의 없다. 한달로 따지면 3주는 해외 출장이다. 아시아와 미국 다른 유럽 국가등이다. 1주일 정도 파리에 있는데 이 때도 대개는 약속 때문에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나는 미슐랭 가이드 사장이자 국제담당 디렉터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프랑스 음식을 즐긴다. 크리스마스때 주로 먹는 칠면조 요리 참 좋아한다. 그런데 외식할때는 그런것 맛 볼 일은 별로 없다.(웃음)”

-직접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가.

“말했듯이 시간이 없어서 집에서는 식사를 잘 못하지만 요리 하는 것 좋아한다. 아까 말한 칠면조 요리도 내가 잘 만드는 메뉴다.”

-외식을 하면 술자리도 적지 않을텐데 숙취 해소에 좋은 음식이 있는가.

“특별한 해장 요리는 잘 생각이 안나는데... 나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주로 해장용으로 식전에 독주를 마신다. 그러면 술 기운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영국에서 블러드 메리를 마시는 것과 비슷한게 아닌가 싶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장 뤽 나레 사장은=미슐랭 가이드 6대 사장인 그는 파리 호텔학교(EHP)를 졸업하고 파리 브리스토 호텔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특급 호텔과 리조트에서 매니지먼트 경력을 쌓았다. 특히 바베이도스의 샌디레인리조트 개장 총 책임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2004년 미슐랭 가이드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미국과 아시아 주요 도시로 평가 대상을 넓혀 미슐랭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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