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논란’ 곤경에 빠진 교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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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왜곡하는 발언을 한 영국인 주교를 복권시킨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유대인들의 반발과 고국인 독일 총리의 해명 요구로 곤경에 빠졌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4일 보도했다.

영국 리처드 윌리엄슨(사진) 주교는 20년 전 교황청의 승인 없이 주교가 됐다가 교황청에 의해 파면당했다. 베네딕토 교황은 지난달 24일 그를 복권시켰다. 그런데 윌리엄슨은 복권되기 직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은 600만 명이 아니라 20만~30만 명에 불과하며, 특히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윌리엄슨을 교황이 복권시키자 이스라엘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크게 반발하면서 즉각 교황청과의 공식 관계를 단절했다. 또 다음달 2~4일 로마에서 열릴 예정인 교황청과 유대교의 모임도 취소했다. 당초 5월로 예정된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도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교황은 “유대인들과 긴밀히 화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윌리엄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일부 신학자가 교황의 퇴진까지 요구하자 교황청은 “이번 복권 결정은 행정적인 실수”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교황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고 나서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 메르켈은 “윌리엄슨 주교 복권 문제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며 “교황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일 언론들도 교황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간지 빌트는 “교황으로 인해 독일의 국가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 만일 독일에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부인한다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취임한 이후 무슬림과 인디언 원주민들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사과하는 등 적지 않게 구설에 올랐다.

또 지난달 말에는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녀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자기 파괴 행위”라고 말해 동성애 인권운동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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