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대국료 없애고 상금제로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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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기사의 애환이 서린 60년 역사의 대국료가 프로기전 발전의 장애물이란 지적과 함께 약육강식의 상금제가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대국료를 상금으로 바꾸자는 데 대한 찬반 논의가 한창이다. 프로기사는 한판의 바둑이 끝나면 승패와 무관하게 '대국료'를 받는다. 60여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대국료의 관행은 이제 오랜 전통이 됐고, 프로세계에 공짜바둑은 없다는 통념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이것을 없애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거둔 기사에게만 상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프로들에게 바둑을 두고도 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한 충격이다. 그러나 상금제는 점차 대세가 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기전의 돈을 대는 스폰서들이 대회의 인기와 진행의 편의를 위해 상금제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의 기사와 아마추어들까지 참가할 수 있는 A세계대회는 가장 인기있는 대회에 속한다. 외국 기사들의 참가 수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주최 측은 예선전이 다가오기 몇달 전부터 고민에 휩싸인다. 예선 대국료 때문이다.

스폰서 입장은 대회의 흥미를 높이는 외국 기사들이 예선에 많이 참가할수록 좋다. 그러나 국내 프로들은 강한 외국 기사들이 너무 많이 참가하는 데다 그들 때문에 대국료도 늘기는커녕 매년 줄어든다고 불만이 크다.

이 대회를 64강이나 128강부터 상금을 지급하는 대회로 바꾼다면 스폰서 쪽의 고민은 간단히 해결된다. 상금 액수도 많아지고 경쟁도 치열해져 대회의 인기도 더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한국기원 입장에선 당장 수용하기 어렵다. 현재 국내 프로기사 수는 198명. 여기에 비행기를 타고 올 외국 기사들을 합하면 300명이 넘기 때문에 대국료를 받지 못하는 국내 기사들이 상당수 나올 수 있다.

몇푼 안되는 예선 대국료를 없앨 생각을 한다는 데 대해 분노를 터뜨리며 부익부 빈익빈의 처지를 한탄하는 기사들도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스폰서들이 대회의 예산을 증액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한국기원의 큰 고민거리다. 매년 프로기사 수가 5% 정도씩 늘어나는데 몇년씩 예산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대국료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또 늘어나는 부담 때문에 아예 기전 개최를 포기하는 스폰서도 있다.

한쪽에선 입단의 문을 넓히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대국료 제도 때문에 프로기사 수가 늘어나면 온갖 돈 문제가 발생한다. 가뜩이나 기업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판이라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대국료를 없애고 상금으로 주자는 얘기가 나오게 됐다. 바둑계에 사람(지망자)과 돈(기전)을 끌어들이려면 골치아픈 장벽부터 없애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반면 64강이나 128강에 들기 힘든 기사들 입장에선 이런 논의 자체가 야속하기 짝이 없다. 평생 누리던 권리인데 그것이 어느날 사라진다는 기득권의 상실감도 작지 않다.

한국 바둑계의 특성에 비추어 이런 문제는 결국 프로기사들이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내 살을 베어 바둑계를 키운 뒤 과실을 나눌 것인가. 아니면 야금야금 줄어드는 푼돈이나마 서로 나누는 쪽을 선택할 것인가. 바둑계 특유의 성장론과 분배론이 지금 한창 토론을 벌이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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