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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작년 순익 반토막 … 4분기엔 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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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기 침체와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가 은행의 실적 악화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18개 은행의 연간 순이익은 7조9000억원으로 전년(15조원)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2003년(1조9000억원) 이후 가장 적은 금액이다.

지난해 4분기만 보면 3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은행들이 분기 적자를 낸 것은 2000년 4분기(4조6000억원)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영업 실적이 나빠진 것은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는 부실 여신이 늘어나면서 은행들이 쌓는 대손충당금이 늘었기 때문이다. 대출한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에 대비해 미리 적립해야 하는 은행들의 대손충당금은 2007년 4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9조9000억원으로 불어났다.

특히 은행들은 올 들어 건설·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면서 예상치 않았던 충당금을 추가로 반영해야 했다. 주재성 금융감독원 은행업서비스본부 본부장은 3일 “지난해 4분기 적자가 난 것은 건설·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에 따른 부실여신 증가로 충당금 적립액이 1조원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익성도 나빠졌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급속하게 떨어뜨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가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3일 2.96%까지 떨어졌다. 은행의 주력 상품인 주택담보대출 중 CD금리에 연동하는 것이 90% 이상에 달하는 만큼 CD금리가 떨어지면 이자 수입이 줄어든다. 반면 예금금리는 연 4%대를 유지하고 있다. 또 지난해 4분기 연 7~8%의 고금리에 5년 이상의 만기로 발행한 후순위채권도 은행 입장에선 부담이다.

이런 영향으로 이자수입에서 조달 비용을 뺀 마진을 얼마나 남기느냐를 가리키는 순이자마진(NIM)은 2007년 2.44%에서 지난해 2.29%로 떨어졌다. NIM이 낮아질수록 수익성은 나빠진다.

주식시장의 침체도 순이익 감소에 영향을 줬다. 은행들이 주식이나 채권 매매로 얻은 이익은 2007년 6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700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올해 전망도 그리 좋지 않다. 한국투자증권 이준재 애널리스트는 “경기 악화와 맞물려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나빠지고 충당금 부담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NIM도 점차 축소될 전망이라 은행들엔 올해가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은행들의 체력이 약해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달 중 조성되는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의 지원 대상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할 가능성이 있는 은행은 우리은행과 광주은행·경남은행 등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와 농협·수협·기업은행 등이 꼽힌다. 정부는 신청 은행이 발행하는 만기 30년짜리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권)을 인수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줄 방침이다.

다른 은행들도 구조조정에 대비해 미리 자본을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지원을 받으면 정부의 간섭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임원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충당금 부담이 계속 늘어난다”며 “올해 안에 대부분의 은행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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