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얼어붙은 수출 … 공포심보다 자신감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1월 수출이 32.8%나 줄어든 것은 1967년 월별 수출입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핵심 품목인 반도체·자동차 수출은 반 토막이 났고 효자 시장인 대중국 수출은 30% 넘게 쪼그라들었다. 환율효과마저 소용이 없었다. 그 결과 무역수지는 30억 달러의 적자로 반전해 원화 가치가 달러당 1390원으로 주저앉았다. 아무리 설 연휴를 감안해도 공포심을 부르기에 충분한 최악의 지표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수출 엔진이 꺼지면 우리도 머지않아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내몰릴지 모른다. 지식경제부 장관은 “수출과 실물경제 위축이 정말 심각하다”고 고백했다. 길고 질긴 경기침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수출 급감은 세계 교역이 곤두박질하면서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그 원인도 우리의 수출 경쟁력 약화보다 도를 넘는 세계 각국의 소비위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과잉설비·과잉고용·과잉부채라는 3과(過)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기 전까지 진통은 불가피하다. 이미 반도체·자동차·액정화면 분야에선 서로 경쟁 상대를 죽이기 위한 ‘치킨게임’이 진행 중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경기부양에 자국산 철강만을 사용하도록 못 박았다. 브라질은 사전수입허가 품목을 늘리고 러시아는 관세율을 올렸다. 보호무역의 불길한 조짐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포심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 지난주 독일 반도체 업체인 키몬다가 파산을 신청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비틀거리고 미국의 빅3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 치킨게임의 승자와 패자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 기업들은 대체로 승자 쪽에 서 있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과 정도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정부는 과감한 재정확대를 통해 내수를 부양하고 은행들은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 노사가 힘을 합쳐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야 우리 경제에 내성이 생기고, 다시 찾아올 회복기에 또 한번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