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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애정과 비판의식 - 정진규씨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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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제3회 현대시동인상 수상작 중 한 편인 이대흠씨의'봄은'을 두고 오세영시인이 자신의 시를 표절한 혐의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이에 이 상의 심사위원인 정진규씨가 반론을 폈다(본지 6월17,24일 42면 보도).이에 대해 오씨가 다시 반론을 보내와 상상력내지 발상의 차원에서 어디까지를 표절로 보아야 될것인가를 놓고 주요한 논쟁으로 비화돼가고 있다. 편집자

정진규씨는 이대흠씨의'봄은'이 필자의'서울은 불바다2'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첫째'꽃이 피어나는 봄날의 생명적 역동성을 전쟁'으로 비유한 것은 보편적인 발상인 까닭에 필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둘째 필자의 작품에서'총구는 하늘을 향해'있으나 이 시인의 그것은'세상을 향해'있다.그런 까닭에 필자가 이 시인의 시에 대해 표절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폐쇄적 우월주의'내지는'과민한 시 읽기'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항의 지적에 대해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그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이다.하나는 필자가 읽은 바 그 어떤 상상력에 관한 저서-예컨대 바슐라르나 리샤르나 엘리아데나 노드럽 프라이나 필립 휠라이트나-에서도 필자는 꽃의 개화를 전쟁의 상상력으로 묘사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설령 그것이 보편적인 발상이라 하더라도 과문한 탓인지 그와 같은 상상력의 구체적 형상화에 있어서-상상력 그 자체는 시가 아니며 그것을 적절한 소재로 형상화시켜야만 비로소 시가 되니까-나무 가지가 꽃 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을 총구로부터 총알이 발사되는 것으로 비유시킨 예를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필자는 이 두가지 가운데서 하나 이상은 필자의 개인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믿는다.

둘째 항의 지적은 별 의미가 있는 것 같지가 않다.하늘이나 세상이나 그것이 그것인 까닭이다.필자의 시에서 총구가 하늘을 향해 있다는 것은 본문의 진술 그대로 비행기의 공습에 대비해서 공중 요격을 한다는 뜻이지 세상을 초월해서 무슨 절대적 경지에 진입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진규씨 자신도 같은 글에서 필자의 시가'사회적 현상과 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자연현상을 전쟁으로 연계한 아주 좋은 상징 공간을 빚어내고'있다 하지 않았는가. 사회적 현상과 관련된 전쟁 혹은 총쏘기가 어떻게 세상을 외면하고 오로지 하늘 혹은 생명 그 자체만을 향해 있을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그리고 심사 당시 필자의 작품을 읽었더라면 과연 이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았을 것인지 묻고 싶다.

무작정 수상작을 비호한다고 해서 상의 권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더불어 필자는 한국 시단의 발전과 건전한 창작 기풍의 진작을 위해 노력하는 일도 선배 시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고 싶다.독자들의 있을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한가지 부연할 것이 남아 있다.필자 역시 현대시 동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몇가지 이유로 인해서 이번의 현대시 동인상 심사부터는 이 상의 운영과 결별했다는 사실이다.

글=오세영 시인.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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