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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동아시아·중국 경제 권위자 라우 홍콩 중문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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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라우 총장은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해 국제통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홍콩 중문대 제공]

 “한국이 경제위기를 빨리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희망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한국 경제 펀더멘털은 매우 건강한 만큼 미래를 낙관하고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늘려야 한다.”

로런스 J 라우(劉遵義·64) 홍콩 중문대(中文大) 총장은 동아시아· 중국 경제의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중국인이다. 최근 홍콩 주룽(九龍)반도에 있는 중문대 총장실에서 만난 그에게 한국 경제의 위기탈출 방안을 묻자 “기대는 그대로 성취될 수 있다(Expectations can be self-fulfilling)”는 답이 돌아왔다. 긍정적 기대를 가지면 긍정적으로, 부정적 기대를 하면 부정적으로 경제가 흘러간다는 의미다.

그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경제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요즘 분·초를 다툴 정도로 바쁘다. 총장 업무는 물론 중국과 홍콩 정부를 위해 각종 토론회에서 금융위기 극복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만 여섯 차례 중국 경제와 금융위기 관련 연구 발표를 했다.

-국제 금융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버블이다. 특히 인터넷 관련 업체 버블이 심했다. 2000년 나스닥 버블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 버블은 (인터넷 관련 주 폭락으로)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문제였다. 경제에서 버블은 때때로 온다. 감독기관이 이를 놓치면 버블은 순식간에 커져 폭발하고 국민들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재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는 무슨 노력을 해야 하나.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기업회계 강화다. 미국의 거대 에너지사였던 엔론은 (2001년)회계부정으로 종말을 고했다. 엔론 사태 이후 미국은 회계감독을 강화하는 사베인-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을 제정했다. 그런데도 회계부정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씨티그룹이나 UBS 등 많은 금융기관이 제대로 회계하지 않아 거액의 손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같은 투자활동은 존재해선 안 된다.


둘째는 지나친 레버리지(leverage)다. 레버리지란 현 자산가치에 대한 부채 비율이다. 1998년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가 있었다. 이 회사는 4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지고 10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운용했다. 1000억 달러가 40억 달러(4%)에 기대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망했고 피해는 투자자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가 망할 때 레버리지는 1:52였다. 미국의 건실한 회사의 레버리지는 1:1 정도다. 1:10만 넘어도 위험수위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허용해선 안 된다.

셋째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다. 사람들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감독기관의 감독실패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문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이다. 그들은 유동성을 갖지 못한 채무자들에게 모기지론을 팔았다. 만약 모기지론을 받은 채무자가 3년 후 상환을 못할 경우 론 판매자가 갚도록 했다면 이런 문제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모든 회사가 미래를 비관하고 있으면 감원하고 투자를 줄일 것이다. 모든 주부가 미래를 암울하게 본다면 당장 소비를 줄여 마이너스 성장이 될 것이다. 반대로 미래를 낙관한다면 투자와 소비가 늘 것이다. (한국)국민들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한국 경제 펀더멘털은 매우 건강하다. 중국·일본·한국이 서로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3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다. 3국은 모두 세금을 내리고 소비를 진작시켜야 한다. 그러면 상대국의 수요도 같이 살아난다. 한국은 인프라 건설에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한국이 4대 강 정비 등 거대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옳은 정책방향이다. 문제는 한국의 은행들이 기업들에 자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기 위해선 예금보다 많은 자금을 외국에서 차입해야 하고, 그것도 단기자금을 빌려야 한다는 점이다. 상환 만기가 되면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살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원화 가치가 불안해지는 구조다. 꼭 빌리려면 장기자금 비율을 높여야 한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어려워 최악의 사태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견해가 있는데.

“(서브프라임 사태 후) 미국의 소비감소는 5% 아래였다. 골드먼 삭스는 올해 미국의 소비감소가 1%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수입과 수출이다. 소비가 5% 줄면 수입은 10% 정도 감소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무역 파트너) 수출은 50%가 줄 수 있다. 미국의 수입업자들이 (금융위기로)크레디트(credit)를 가질 수 없어 신용장 개설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이나 중국의 수출업자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 수입업자들이 재고를 모두 처리하고 크레디트를 확보하면 바로 해결될 것이다.”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해 경제실적이 예상보다 좋았고, 중국이 국제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동의하는가.

“중국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높지 않다. 수출의 실제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7% 정도다. 물론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다. 수출이 많은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이나 저장(浙江)성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수출이 거의 없는 허난(河南)성은 별 문제가 없다. 중국 정부는 최근 경기부양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또 중국의 대부분 금융기관은 건전하다. 그들은 서브프라임 론을 사지도 않았고 외채도 적다. 그 때문에 중국 금융권은 유동성이 풍부하고, 미국이나 한국의 금융기관과 다르다. 결론적으로 올해 7~8%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기업들이 달러 아닌 위안화로 무역결제를 하도록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기적으로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한 국제통화(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효력은 엄청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중국이나 동아시아가 조만간 전 세계를 구제할 만한 강력한 경제력을 가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중국과 동아시아는 앞으로 외부 경기 상황에 대해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국제 금융위기 방지를 위해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번 위기가 극복되면 IMF는 이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국제경제에 대처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 간 무역수지 불균형 해결이다. 이를 위해선 동아시아 각국이 상호 비교우위를 이용해 역내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30년은 성공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와 향후 30년 중국 경제의 방향은.

“성공 이유로는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 평균 30%가 넘는 저축률, 13억의 소비시장, 시장경제 시스템 등이 꼽힌다. 특히 중앙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성공의 핵심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경제개발을 했다는 의미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도·농 소득격차나 환경문제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모든 국민이 많은 혜택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30년 동안 중국 경제는 시장경제 체제를 발전시키고 구체화해야 한다. 예컨대 반독점법을 강화해 경쟁체제를 강화해야 하고, 서비스와 수출입에서 대외개방을 넓혀야 한다. 증권시장 등 금융부문은 투명성을 높이고, 연금과 의료보험·의무교육 확대 등 사회복지 부문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라우 총장은 …

 세계적인 동아시아 및 중국 경제전문가. 특히 그의 경제발전·성장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홍콩 정부의 경제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각료(무임소장관)면서 중국 정치자문기구인 정치협상회의 위원이다.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태생으로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물리학과 경제학 학사학위(1964년)를 받았다. 이어 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 석사(66년)와 박사(69년) 학위를 받았다. 66년 대리강사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스탠퍼드대학에서 40년 가까이 교수, 연구활동을 했다. 66년 처음으로 중국의 계량경제 모델을 개발한 후 매년 보완 발전시켜 중국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제계량경제학회 등 10개 경제 관련 학회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등 10여 개 연구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2004년 7월 중문대학 총장에 부임했다. 그는 ‘학생 중심(student-centered), 연구기반(research-based)’ 기치를 내걸고 공부하는 대학으로 개혁을 진행해 중문대를 세계 42위(영국 더타임스 2008 대학평가)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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