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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벤처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휴맥스 20돌 변대규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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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변대규 휴맥스 대표가 29일 서울 조선호텔에 마련한 창사 20주년 간담회에서 “셋톱박스 전문회사에서 홈네트워크의 중심 기업이 되겠다”는 향후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벤처 신화’ 휴맥스가 다음달 1일 창사 20돌을 맞는다. 사업 토양이 척박한 국내에서 무일푼의 기술 벤처로 시작해 스무 살이 된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지난해 7000여억원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로 벌어들였다는 점에서 ‘벤처 신화’로 평가받는다. 개발연대 고도성장기가 끝난 1980년대 이후 맨손으로 모험기업을 일으켜 글로벌 수출 대기업이 된 건 휴맥스가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창업자인 변대규(49) 대표는 서울대 공학박사(제어계측) 학위를 받은 뒤 벤처라는 말조차 생소한 89년에 회사를 세운 ‘벤처 1세대’다. 서울 신림동 모교 인근의 좁은 사무실에서 자본금 5000만원, 직원 11명으로 시작한 휴맥스를 지난해 임직원 742명, 매출 7600억원 규모의 세계적 위성방송 셋톱박스 회사로 키웠다. 97년과 2001년 이후의 외환위기와 정보기술(IT) 산업 거품 붕괴, 그리고 지난해 이후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도 성장세와 흑자를 유지했다.

그런 휴맥스가 또 다른 20년을 겨냥해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변 대표는 2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창사 20주년 간담회에서 “홈네트워크를 미래 수종사업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방송프로그램을 TV로 보여주는 셋톱박스 제조회사에서 가정의 디지털 미디어를 총괄하는 지능형 홈네트워크 솔루션 업체로 탈바꿈하겠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회사가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는 위기를 벗삼아 커왔다. 외환위기 폭풍이 몰아치고, IT 버블이 꺼진 때가 그랬다. 외환외기가 발발한 97년 142억원이던 매출이 이듬해 284억원으로 두 배가 됐다. 99년 541억원, 2000년 1426억원, 2001년 3150억원으로 쑥쑥 컸다. 창업 이듬해를 빼면 적자를 낸 적이 없다.”

-금융위기로 실물경기까지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대다수 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다. 우리 회사는 지난해 매출(7696억원)과 영업이익(228억원)이 2007년보다 늘었다. 올해는 매출 8000억원과 영업이익 300억원 돌파가 목표다. 지난해 계약했던 올해 수출 물량이 늘어서다. 특히 유럽의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 업계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어 시장 상황이 나쁘지 않다.”

-어려울 때 힘을 더 내는 비결은.

“해외에서 기술과 네트워크·품질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눈앞의 이익이나 조급함 때문에 서두르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셋톱박스 입찰에 나설 때 대단위 물량에 욕심이 날 때가 많지만 단가를 너무 깎으면 과감히 포기했다. 초기부터 해외시장에 주력한 것도 리스크 분산에 도움이 됐다. ‘품목은 셋톱박스에 집중하되 시장은 다양화한다’는 전략을 펼쳤다.”

-셋톱박스로 계속 승부하나.

“한국 기업은 뛰어난 엔지니어링 기술과 우수한 양산 인프라 덕분에 해외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 같은 후발주자의 등장에 이제 이런 강점이 통하지 않게 됐다. 제품 주기를 선도하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올해부터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

-어떤 것이 있나.

“홈네트워크를 조정하는 지능형 중앙처리장치 전문회사로 변신할 생각이다. 대부분 PC에 인텔 칩(CPU)이 들어가듯, 미래 가정의 디지털 미디어 컨트롤타워에는 휴맥스 제품이 핵심장치가 되도록 하는 게 꿈이다. 또 지난해 자본금 200억원으로 설립한 ‘휴맥스I&C’라는 투자회사가 있다. 이를 통해 새 비즈니스를 찾고, 참신한 벤처기업 육성에 나서겠다.”

-수출 위주 기업이다.

“내수 시장만 봤으면 사업을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성공했다는 벤처가 숱하게 나왔지만 대개 한순간에 사라졌다. 해외로 나가야 진정한 성공이다. 휴대전화 하나로 세계를 누빈 팬택은 인상 깊은 벤처였다. 경영난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지만 그런 벤처가 많이 나와야 한다.”

-휴맥스 진출 지역은.

“97년 영국을 필두로 중동(99년), 독일·미국(2000년), 일본(2001년), 인도(2003년), 호주(2004년), 홍콩(2005년), 태국(2007년) 순서다. 내수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유럽과 미국·남미 지역이 절반 이상이지만 아시아·태평양과 중동 등지로 골고루 퍼져 있다. 전 세계 위성방송 셋톱박스 시장에서 프랑스 톰슨에 이어 2위권이다.”

-국내 벤처의 글로벌 공략법은.

“한국 대기업의 브랜드 파워는 해외에서도 알아준다. 하지만 벤처기업은 무명선수다. 뒷골목부터 쏘다녀야 한다. 4차로 포장도로는 초심자의 몫이 아니다. 뒷골목에서 터전을 닦은 뒤 점점 큰 길로 나가야 한다. 90년대 말 셋톱박스를 들고 유럽에 진출할 때 틈새시장부터 개척했다. 대기업이 거들떠보지 않는 일반 소비자 가전 유통망부터 공략한 뒤 세를 키워 3년 만에 선두업체로 올라섰다.”

-청년 취업난으로 난리다. 휴맥스가 젊은 인재를 많이 채용하면 좋겠다.

“우수 인력들은 여전히 30대 그룹을 선호한다. 3년 전부터 대졸 공채를 시작했는데, 후배인 서울대생을 한 명도 받지 못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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