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실리콘 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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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가 쓴'미래로 가는 길'엔 컴퓨터의 가능성에 가장 먼저 눈을 떴던 사람이 1830년대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학교수였던 찰스 베비지라고 소개하고 있다.베비지는 정보를 숫자로 바꿔 처리하는'분석기계'를 창안했다.

그로부터 1백년이 지난 1930년대 역시 케임브리지대 출신 수학자 앨런 튜링은 베비지가 창안한 원리에 기초해 범용계산기'튜링 머신'을 고안해냈다.튜링은 클로드 섀넌,존 폰 노이만과 함께 세계 최초로 전자컴퓨터를 개발한 3인중 한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케임브리지대는 전통적으로 수학이 강하다.만유인력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은 1669년부터 30년동안 케임브리지대 수학교수로 있었다.'시간의 역사'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도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물리학을 전공했으며,뉴턴이 맡았던 루카스 석좌(碩座) 수학교수직을 맡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케임브리지에 6천만파운드를 투자,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맞먹는 세계적 전자연구단지를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마이크로소프트로선 해외에 세우는 첫번째 연구단지다.연구단지가 들어설 케임브리지 서쪽엔 벌써 '실리콘 펜(늪)'이란 별명이 붙었다.

게이츠는 지난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유럽과 같은 훌륭한 지적 환경에서 왜 훌륭한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전자연구단지 후보로 유럽 여러 곳을 돌아본 뒤 케임브리지를 택했다.게이츠는 선정 이유를“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과학두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리콘 펜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케임브리지대는 이미 합동위원회를 구성,연구원과 교직의 병행을 허용하고 실험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등 긴밀한 관계 유지를 약속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케임브리지 진출에 대해 영국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특히 케임브리지대는 자신들의 존재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반기고 있다.그러나 일부에선 영국의 두뇌를 왜 외국회사가 사용하도록 방치하는가 하는 자성(自省)의 소리도 있다.한국을 방문한 게이츠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서울과학고를 방문했다.우리 두뇌를 우리가 아껴 쓰지 않으면 남에게 빼앗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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