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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명단에 액수.선물품목 기록 女초등교사 촌지장부 발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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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못볼 걸 보고 난 심정입니다.현직 교사가 받은 촌지 액수와 선물 목록을 만들어 관리해온 이유가 뭐겠습니까.” 사교육 비리를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安大熙부장검사)는'촌지 장부'를 만들어 거액의 금품을 챙겨온 서울시동작구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 A(54)씨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놓고 19일까지 꼭 1주일간 연일 난상토론을 벌였다.

한국교육방송원(EBS)고위간부인 남편 B(구속중)씨가 업자들로부터 2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포착돼 13일 검찰이 B씨 자택 압수수색을 벌인 것이 사건의 발단. 방안의 장롱 서랍을 열었던 수사진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포장도 뜯지 않은 선물과 립스틱.향수.마스카라등 화장품 수백점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10만원권 수표 2장과 1만원권 10장이 든 두개의'봉투'와 내용물이 없는 빈봉투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선물과 봉투들 사이에서 출석부나 종합생활기록부와 비슷한 형식의'이상한'장부까지 발견된 것이다.

장부 왼편에는 A씨가 담임을 맡은 반 학생 30여명의 명단이 번호순으로 적혀 있었고 오른편에는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2월까지가 월별로 정리돼 있었다.

내용은'97년5월 20,△△△ 상품권10,□□□ 립스틱'식으로 A씨가 받은 촌지는 만원단위로,선물은 품목명을 정리해놓은 것이었다.얼핏 보기에 스승의 날 전후와 학기초인 3월엔 빈칸이 없을 정도로 빼곡이 적혀있어 거의 모든 학생이'성의'표시를 한 것같았고 총 액수도 몇백만원은 되는듯 싶었다.

특히 A씨는 올해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뿐만 아니라 최근 몇년간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의 촌지 명세를 보관하고 있어 수사관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수사팀은 그러나 이 장부가 남편 B씨의 범죄 혐의와 무관한데다 A씨가“남편도 모르는 사실이며 교사 촌지를 수사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호소하는 바람에 장부를 압수하지 않은채 철수했다.

그러나“공무원 신분의 교사가 직무와 관련해 받은 금품은 뇌물로 형사처벌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검찰이 며칠뒤 다시 찾아갔을 땐 A씨가 이미 이 장부를 없앤 뒤였다.

검찰은 하는 수 없이 ▶수년간 촌지 명세를 기록했던 사실▶문제의 촌지 장부를 검찰 수사관이 확인한 사실등 16절지 두장분량의 A씨 자술서를 받아놓은 상태.검찰은 그러나 A씨가 담임을 맡은 초등학교 4년생들에게 끼칠 교육적 악영향등을 고려해 이같은 사실을 교육청에 통보해 처리토록 하고 형사처벌 문제는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한편 A교사는 이에 대해'촌지 명세서'는 기억이 없으며 선물등이 많이 발견됐다는 검찰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권영민 기자

서울교육청 “징계 회부” 서울시교육청은 19일 동작교육청에 진상조사를 벌여 A교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도록 지시했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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