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유럽 순방 때 프랑스 안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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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중국과 프랑스의 외교 갈등이 감정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폴란드에서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면담한 것이 발단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이자 중국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강도 높고 신속한 후속 조치도 뒤따랐다. 중국 주재 프랑스 대사를 소환해 항의하는 한편 중국과 유럽의회가 열기로 했던 정상회담을 연기했고,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 협상도 중단했다. 중국의 프랑스 공관은 사이버 테러를 당했고, 프랑스를 여행하는 중국인 관광객도 줄었다.

올 들어 중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더 얼어붙고 있다. 당초 프랑스 언론들은 중국과 프랑스의 수교 45주년 기념일(27일)이 교착 상태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쿵취안(孔泉)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는 27일 대사관에서 친중파로 분류된 장 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전 총리 등을 초청해 수교 45주년 기념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중국 측은 사르코지 정부가 마련한 공식 행사에는 참석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대통령궁은 이날 예정돼 있던 수교 45주년 기념 행사 겸 중국 춘제(春節·설날) 축하 행사를 뒤늦게 전격 취소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 접견과 관련해 아직 중국 정부에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불쾌한 속내는 원자바오(溫家寶·사진) 중국 총리의 유럽 순방 일정표에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프랑스 언론은 지적했다. 이번 유럽 순방은 중국이 유럽 국가들과 투자·금융 협력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돌파구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를 방문할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27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예정된 원 총리의 유럽 순방국 리스트에 프랑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원 총리는 스위스·독일·스페인·영국과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할 예정이지만 ‘유럽의 강자’를 자처해온 프랑스 방문 계획은 잡지 않은 것이다. 중국 정부는 원 총리의 이번 유럽 순방을 ‘신뢰의 여행(信心之旅)’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순방 대상국 선정에 각별히 신경 썼다. 원 총리는 이번 순방길에 이들 나라와 38개 협정을 맺고 4개 공동 성명을 채택할 예정이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원 총리의 순방국에서 프랑스가 빠지자 프랑스의 재계·학계에선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50주년인 올해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 쉽지 않다”며 “4월 2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사르코지 대통령이 나란히 참석하는 G20(주요 20개국) 런던 회의가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전망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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