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비타민] 대법원 “의도하지 않은 알박기 처벌은 부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부동산 ‘알박기’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김모(47)씨는 1991년 4월 울산시에서 47㎡의 주택을 샀다. 김씨는 이곳에 5년 동안 살다가 친척에게 세를 주고 이사했다. 10년 뒤 김씨에게 ‘대박’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5년 1월 건축시행사인 I사가 김씨의 부동산이 포함된 부지에서 아파트 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I사는 김씨에게 땅을 팔 것을 제의했지만 김씨는 더 비싼 가격을 요구하며 거부했다. 이 바람에 I사의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주택건설사업 계획 승인 신청이 지연되면서 월 6억원의 금융 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I사는 이 땅을 18억5000만원에 샀다. 당시 시가(4400만원)보다 40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이후 김씨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였다. 형법(349조)은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을 취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 2심 법원은 김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업부지 전체의 소유권을 확보해야 하는 I사의 급박한 상태를 이용해 마지막까지 계약을 미루며 압박해 다른 토지보다 현저하게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는 이유였다. 1심에서는 징역 1년, 2심에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이 판결을 파기했다고 28일 밝혔다. 대법원은 “김씨가 사업 추진 전부터 부동산을 소유해온 상황에서 이를 매도하라는 제안을 거부해 큰 이득을 취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당이득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I사가 궁박한 상태에 빠지게 된 데에 김씨가 적극적으로 원인을 제공했거나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개발사업 등이 추진되는 상황을 미리 알고 사업 부지 내의 부동산을 사들였거나, 피해자에게 협조할 듯한 태도를 취해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뒤 협조를 거부하는 수법으로 큰 이득을 챙겼을 경우에 부당이득죄가 성립한다.

한편 김씨는 형사 소송과 함께 진행된 I사와의 민사 소송에서 법원의 강제 조정으로 16억1000만원을 I사 측에 돌려줬다.

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