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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속의홍콩>홍콩반환 앞으로 11일 정치.인권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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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홍콩섬 중심가 애드머럴티 센터에 위치한 홍콩 민주당 주석 마틴 리(李柱銘)의 사무실엔 하루종일 전화와 팩스 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홍콩을 찾는 8천여 외신기자들 대다수가 그를 찾기 때문이다.겹치기 인터뷰까지 하게된 마틴 리는 그래서 입이 부르틀 지경이다.가뜩이나 마른 몸에 살이 더욱 내려 초췌한 모습이다.

외신기자 인터뷰 0순위에 마틴 리가 오른 것은 그가 바로 영국이 홍콩에 남기고 가는 첫번째 유산이랄만한'민주'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그는 91년 실시된 최초의 입법국 직접선거에서 유권자 74.5%의 지지를 획득,최대 개인득표 기록을 세울 정도로 홍콩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그래서 그는'홍콩의 양심'으로 통한다.

하지만 앞으로 열흘후면 그의 활동 공간은 사라진다.현 입법국이 해체되고 중국정부가 구성한 임시입법회가 정식 입법회로 들어서기 때문이다.최근 마틴 리의 열변이 대부분 임시입법회 성토에 모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최근 주권이양식 행사엔 참가해도 곧 이어지는 홍콩특별행정구(SAR)성립식엔 참석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SAR성립식에 임시입법회 의원들의 취임선서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러나 요지부동이다.영국이 정치 개혁안을 추진,95년 직접선거를 치른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판단이다.

결국 마틴 리는'돌격전'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임시입법회원들이 등원하는 7월1일 입법원을 돌파한다는 계획이다.이들은 7월1일자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입법국에 들어설 자격이 사라진다.그래서 이들의 진입엔 한바탕 소란이 불가피할 것같다.

그래도 마틴 리는 이를 강행할 생각이다.“홍콩은 반환돼도 민주는 쟁취해야되는 것”이라는 평소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마틴 리와 함께 홍콩민주당의 쌍두마차인 스투화(司徒華)의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66세의 나이에도 불구,그는 지난 15일 장대비를 뚫고 거리에 나섰다.

노정객의'인권법안 개악한 임시입법회 철폐하라'라는 구호에 동참한 민주인사들은 숙연한 표정이었다는 후문이다.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민주인사는 “'악법환원이 웬말이냐.홍콩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는 선배 정치인의 진지한 모습에서 홍콩 민주주의의 밝은 장래를 봤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들 민주정치인의 장래는 어둡기만 하다.7월1일부터 이들 민주인사에게는 법률적인 각종 질곡이 강제되기 때문이다.우선 지난 14일 임시입법회가 통과시킨'사단(집회)및 공안조례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홍콩인이 시위를 하려면 반드시 7일전 경무처장에게 통고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또 홍콩의 정치성 단체들은 외국 단체들과의 교류가 전면금지된다.민주당의 중요 자금줄이었던 해외 화교들의 헌금을 차단하기 위해서다.홍콩단체들 또한 철저히 등록제에 의해 관리된다.손발이 묶이는 것은 물론 눈귀까지 가려지는 형국이다.

중국이 홍콩내 민주인사들은 물론 미국.영국등 서방국가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반민주화.반인권법을 강행하게 된 것은 '영국 탓'이라는 게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천밍치우(陳明銶)교수의 분석이다.

陳교수는“영국의 홍콩 민주화조치는 반환을 앞둔 시점이 아니라 적어도 30년쯤 전에 시행됐어야 했다”며“홍콩에 민주화가 정착됐다면 오늘날처럼 중국에 의해 홍콩의 민주화가 급격히 퇴보하는 불행한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과거 영국의 통치편의를 위해 자유를 저당잡혔던'자유항 홍콩'은 이제 또다시'중국적 통치질서'를 위해 민주를 제한당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미국이 최근 홍콩의 인권과 자유에 부쩍 관심을 표명하지만 이 또한 홍콩내 미국 이익을 보호하는 차원 이상은 아니란 지적이 높다.

그럼에도 미국 덴버에서 20일 열릴 8개국 정상회담에서 홍콩 안정문제를 다루겠다는 예정에서도 표명됐듯 홍콩의 민주화와 인권은 서방국들의 관심사항임이 분명하게 드러난 만큼 서방국가들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홍콩 민주인사들이 기댈 유일한 언덕인지도 모른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민주당주석 마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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