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개혁 충돌, 냉정을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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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숭고하고 원대한 목표를 가진 사업이 자칫 목전의 이해에 얽힌 감정싸움에 먼저 빠지고 마는 경우를 흔히 본다.금융개혁안을 놓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 사이에 생긴 대립도 이런 감정다툼으로 전락해 버릴까봐 두렵다.

정부의 금융개혁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는 것은 한은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하지 못할 일은 결코 아니다.오히려 한은노동조합은 금융전문가 집단이기도 하므로 노동조합이라는 특성매김을 떠나서 이런 논의를 할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은노조가 금융개혁안을 두고 단체적으로 실력행사를 한다는 것은 전문가 집단의 정도에선 벗어난 일이다.더구나 파업까지 운운하는 것은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제도에 관련된 전문가들로서의 입장이라기보다 이해단체인 노동조합으로서의 입장이 더 강한 것으로 비친다.

이래서 지금 시중의 여론은 재경원과 한은 사이의 대립을'밥그릇'싸움이라고까지 비하(卑下)해서 부르고 있다.새 제도가 한은직원들의 직위.보수(報酬)체계에 하향(下向)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데 대한 항의라면,그것은 어디까지나 금융개혁안에 대한 전문적 반대의견과는 분리해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당연한 분리가 고급 두뇌집단에서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재경원도 마찬가지다.은감원.증감원.보감원 직원의 대우가 높다는 뉴스가 갑자기 나오는 것이나,한은에 대한 감사원감사를 실시하겠다는 소문이 나도는데 그 진원은 재경원과 관계가 없을까.악순환만 조장하는 너무도 부적절한 대응이다.

재경원은 이번 금융개혁안이 가지고 있는 불합리한 조항에 대해서는 한은쪽의 말에 성심껏 귀를 기울여 법안성안과 국회논의과정에서 고쳐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안 그래도 불안한 우리나라 금융사정이 재경원-한은 사이의 감정적 고래싸움으로 말미암아 새우등 터지듯 해서는 안된다.이자율 불안,주식시세 급락현상이 생긴 것은 이 싸움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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