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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賢들에 듣는 '삶의 도리' 에 관한 책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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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바람 소리와 달빛에 이는 흥취 한이 없어/나의 회포 상쾌하게 하고 번잡함을 씻어주네/이 두 가지의 청풍과 명월 사지않고도 얻을 수 있으니/어찌 많은 돈을 허리에 감고 다니랴.” 자연의 청풍명월을 즐기는데는 돈 한푼 들일 필요 없다는 고산(孤山)윤선도(尹善道)의'청풍명월불용일전매(靑風明月不用一錢買)'의 한 구절이다.답답한 세상에 선현(先賢)들의 청량제같은 작품을 읽으며 마음을 풀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제격인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옛 어른들의 글을 모은'한정록'(솔刊),'유배지에서 부르는 노래'(중앙 M&B刊),'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석필刊)가 우선 꼽힌다.'한정록'은 허균이 중국 고서 가운데 옛 선비들의 한적한 모습을 다룬 부분을 추려낸 것.'유배지에서…'는 고산의 일대기와 시가(詩歌)를 함께 실었고'선악이…'는 퇴계(退溪)이황(李滉)이 남긴 사람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적고 있다.이 책들은 선인(先人)들의 여유로운 삶의 자세를 보여주며 동시에 현대인들에게'사람 도리'를 잊지말라고 일러준다.

'한정록'은 세상 풍파를 멀리하고 은둔해 살아가는 구체적 방법과 도가사상에 가까운 유유자적한 멋을 소개하고 있다.

죽림칠현(竹林七賢)가운데 한사람인 유령(劉伶)의 일화도 그중 하나.술을 무척 즐기는 유령은 가끔 집에서 벌거벗은 알몸으로 지내기도 했다.사람들이 이를 나무라면 그는“나는 천지를 집으로 삼고 이 방을 옷으로 삼는데,여러분은 무슨 일로 나의 옷속에 들어왔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후한시대 벼슬을 마다하고 토실(土室)속에 숨어 속세와 인연을 끊은 원굉(袁),갖옷을 걸치고 신을 지으며 살았다는 당나라 주도퇴(朱桃椎)의 이야기도 권력다툼과 거리가 먼 깨끗한 삶의 정형을 보여준다.

'유배지에서…'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검소함과 겸손함에 대한 글들이 담겨 있다.이 책은 고산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박준규 전남대교수가 썼다.

고산은 세차례의 유배생활과 85세로 전남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연에 귀의해 욕심없는 인생을 살다 갔다.너무나 유명한'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오우가(五友歌)'등 시의 내용 대부분이 번잡한 속세와 대비되는 자연을 그리고 있다.“황원포안에 있는 부용동/오막살이 세 칸이 내 머리를 덮고 있네/보리밥 두 끼에 평소 즐기는 경액주나 마시고 나면/이 몸 다하도록 이밖에 또 무엇을 바라리.”세번째로 유배 내려가 지은'기실(記實)'에는 소박한 삶을 즐기던 고산의 생활철학이 묻어나 있다.

'선악이…'는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가 고서점에서 발견한'퇴계가훈'을 직접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것.퇴계가 쓴 예절과 마음가짐에 관한 격언이 수록돼 있다.

“재물은 뜬 구름과 같아 패망이 이로 말미암나니/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줄 바는 무엇인가/재물을 물려주면 도리어 윤리를 어김이 있을지니/학행을 가르치고 서책을 갖추어 주도록 하라(財是浮雲 敗亡由此/于子于孫 所給何物/貽財給貨 反有悖倫/敎以學行 備給書冊).”어리석고 물욕에 가려 자라면 사람의 도리를 잊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퇴계는 이와 함께 형편이 넉넉하면 남 돕기에 주저말고 굶주린 사람을 대가없이 도우며 세상 미물과 자연을 아끼라고 이르고 있다. 홍수현 기자

<사진설명>

고산 윤선도의 고향인 전남해남 연동마을에 있는 녹우당고택의 정취가 시심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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