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문에 축소조작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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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총련(韓總聯)지도부가 이석(李石)씨 상해치사사건의 가해(加害)학생들을 축소조작했음이 밝혀져 또 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선량한 시민을 경찰프락치로 몰아 감금한 뒤 뭇매를 가해 숨지게 하고도 그 진상을 밝히고 사죄하기는커녕 은폐축소를 기도했다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두번씩이나 국민들을 실망시킨 그들의 행위에서 우리는 지난날 독재권력의 잘못을 다시 보는 전율을 느낀다.

오늘은 6.10항쟁 10돌이다.우리는 오늘의 한총련사태를 바라보면서 10년전 학생.근로자뿐 아니라'넥타이부대'까지 거리로 끌어내는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을 생각하게 된다.민주화를 촉발시킨 운동권학생의 죽음과 10년후 학생운동조직에 의해 저질러진 한 시민의 죽음이 닮은 꼴이라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87년 朴군을 물고문한 경찰은“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하더니,경찰 수뇌부가 모여 고문경찰관의 숫자를 축소은폐했다.이번 李씨 치사사건 직후 한총련은 고문사실을 은폐한채“진술이 엇갈릴 때마다 몇차례 때렸으며 잠을 재운뒤 호흡이 이상해져서 병원에 옮겼다”고 하더니 관련자를 축소조작했다.

민주화된 사회의 학생운동조직이 독재권력시절의 반인륜적 가혹행위를 답습하고 그 뒤처리마저 본떴다는 사실은 비극이다.전남대 등에서 발생한 또다른 변사사건에 대해서도 한총련이 의심을 받는 것은 과거 의문의 변사사건이 벌어지면 모처에 의혹의 시선이 쏠렸던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한총련은 이번 사태로 시대착오에 빠진 이념과 행동,조직의 비민주성 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어떻게 이처럼 기성사회의 못된 면만 골라 배웠는지 한심할 뿐이다.

은폐축소 음모의 종말은 그 집단의 파멸 뿐이다.한총련지도부는 더이상 사건을 왜곡하지 말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나머지 가해학생들도 스스로 경찰에 출석토록 함으로써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경찰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은폐축소를 기도한 한총련지도부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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