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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새, 도심에 터잡고 겨울나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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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마륵동 극락강. 왜가리·쇠백로·혹부리오리·청둥오리 같은 철새 수십 마리가 뒤섞여 있다. 매서운 강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얕은 물이나 강가 잡풀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혹부리오리·청둥오리는 겨울 철새지만 왜가리·백로는 여름 철새다. 한겨울인데도 도심을 떠나지 않는 여름 철새가 늘고 있다. 목이 길고 날씬한 백로과(科) 새들이다. 백로과 새들은 원래 농촌마을 뒷산에 집단 번식하며 주변의 농경지나 하천에서 물고기나 곤충을 잡아먹고 살고 있다.

광주시 서구 마륵동 극락강에서 왜가리 등 백로과 여름 철새가 청둥오리 같은 겨울 철새와 뒤섞여 있다. [광주=프리랜서 오종찬]


호남대 이두표(생물학과) 교수가 최근 광주 시내 극락강과 황룡강, 광주천에서 모니터링을 한 결과 왜가리·중대백로·중백로·쇠백로·해오라기 등 백로과 여름 철새 194마리를 확인했다. 조사를 시작한 2003년 겨울 55마리였던 게 2005년 82마리, 2006년 149마리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백로, 도시로 진출”=광주에선 1994년 여름 시 외곽인 광산구 서봉동 호남대 뒤편 어등산 중턱에 해오라기 1000여 마리가 몰려와 처음으로 둥지를 틀었다. 97년부터는 다른 백로 종류도 합세했다. 2000년 이후 아파트단지를 낀 북구 동림동 운암산까지 진출했다. 지난해엔 호남대 도서관 옆 숲에서 500여 마리, 운암산 일대에서 1000여 마리가 번식한 뒤 돌아갔다. 하지만 이 중 200여 마리는 텃새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수는 “도심의 백로는 사람 가까이 번식함으로써 천적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고 인간의 문명을 적당히 이용하면서 적응해 가고 있다”며 “도시에서도 사람과 백로의 공존 방법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2~3년 전부터 울산시 도심을 흐르는 태화강의 십리대숲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봄에 찾아왔다가 늦가을에 떠나던 왜가리 1000여 마리 가운데 100여 마리가 아예 둥지를 틀고 겨울 손님인 떼까마귀·청둥오리와 뒤섞여 먹이 경쟁을 하는 등 텃새 행세를 하고 있다. 백로과 새들이 야간에도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먹이를 잡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녹색에너지촉진시민포럼의 황인석 사무총장은 “백로 등 여름 철새가 겨울 추위를 잊고 텃새화하는 것은 산업체들이 내뿜는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라며 “새들이 찾아드는 것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지만 대기오염물질로 생태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기원·천창환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백로=3~4월에 우리나라에 와 번식한 뒤 9~10월 동남아로 날아가는 여름철새다. 일부 무리는 번식 후에도 중·남부 지방에서 겨울을 나는 텃새가 되고 있다. 백로류는 50여 종이 있으며 이 가운데 왜가리·중대백로·중백로·쇠백로·황로·해오라기 등은 같은 장소서 집단 번식한다. 대체로 부리와 다리 및 S자 모양의 목이 길어 날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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