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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인사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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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종도 인사를 어려워했다. 통치라면 도가 텄을 무렵인 재위 29년, 과거시험 문제로 ‘인재를 구해 쓰는 법’을 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왕은 말하노라. 인재는 천하 국가의 지극한 보배다. 세상에 인재를 들어서 쓰고 싶지 않은 임금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국왕이 인재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세 가지 있으니 첫째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요(不知), 둘째는 인재를 절실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不切), 그 셋째는 국왕과 인재의 뜻이 합치되지 못할 경우다(不合).”(박현모의 『세종처럼』)

세종이 말한 ‘합치’를 요샛말로 하면 ‘코드’다. 국정 목표를 공유하느냐다.

사실 코드인사는 현실이다. 인사권자가 생각이 비슷하고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발탁하고 싶어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래 왔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당 정치의 요체이기도 하다. 정당이 권력을 획득하려는 목적은 정강 정책의 실현에 있고, 그러기 위해선 정책 목표를 잘 아는 사람들이 책임지는 자리를 맡곤 하기 때문이다.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우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을 측근들로 채웠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에서 코드인사는 비판의 대상이다. 인사 전횡 또는 무능의 동의어쯤으로 쓰인다. 노무현 정부의 유산 탓이다. 2003년 이래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느냐”가 인사의 제1 원칙이 됐고, 대통령과 친분을 내세운 386들이 능력에 걸맞지 않은 자리를 꿰차고 어설프게 노무현식 개혁을 주도했다는 인식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대는 끝났으나 코드인사란 단어는 살아남았다. 쓰임새는 넓어졌는데 뉘앙스는 그대로다. 근래엔 능력 여부를 떠나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면 무조건 코드인사라고 비난하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1·19 개각을 두고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췄던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나 정책 브레인 출신인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만 해도 이해한다. 하지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코드인사라고 하는 건 좀 심하다. 이 대통령과 친기업적인 성향을 공유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에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윤 후보자가 노무현 정부 시절 3년간 금융위원장으로 지낸 것은 어찌 볼 텐가. 노무현 청와대는 윤 후보자를 임명하면서 “금융계와 관계의 신망이 높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이제 와서 윤 후보자의 김영삼 정부 시절 관료 경력을 문제 삼아 “다시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와선 안 된다”고 비난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연말에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던 80여 개의 법안을 두고 ‘MB악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중 50여 개는 여야 합의로 이미 통과됐다. 정치적인 공세와 실질이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코드인사 논란도 이와 유사할 수 있다. 코드인사를 하지 말라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인 요구다. 어쩌면 코드인사란 비판 자체가 부당할 수도 있다. 대통령과의 인연만 따지고 비판하다가 정작 중요한 인사 포인트를 놓칠 우려도 있다. 바로 대통령 주변의 인재 포진 말이다. 대통령이 눈살만 찌푸려도 주변에선 오금이 저린다는 게 권력의 생리다.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말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더욱이 자기 목소리가 강한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정 챙겨봐야 할 점은 대통령 앞에서 그의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만큼 이질적이고 다양한 개성과 신념의 소유자들이 발탁됐느냐가 아닐까. ‘코드’ 인물이냐, 정적(政敵) 출신이냐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강력한 개성, 강력한 의견의 가치를 강력하게 신봉한다. 좋은 결정은 그런 곳에서 나온다”(오바마 대통령)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세종의 치세엔 유가(황희)·법가(허조)·도가(맹사성)·불가(변계량)적 인물들이 있었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