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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한총련은 환상서 깨어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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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총련은 이미 1년전에 깃발을 내렸어야 했다.불과 1년이 채 안된 연세대사태의 깊은 상흔(傷痕)이 지금도 연세대 캠퍼스에 남아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경찰을 적으로 몰아 시가전을 벌였던 당시 한총련의 시위폭력에 국민들은 전율했고 대학생들 스스로의 탈퇴가 속출할만큼 한총련의 존재가치는 사라졌다.

그런데도 잔명(殘命)의 마지막 깃발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운동차원이 아닌 히스테리적 극렬집단의 폭력시위가 돼버렸다.그 결과 전경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애꿎은 시민을 고문해 때려 죽이는 끔찍한 사태까지 몰고온 것이다.

왜 1년전에 깃발을 내렸어야 하는가.이른바 NL계 학생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주사파적 민족해방이 우선 이론상 누구의 지지도 받을 수 없을만큼 세상은 바뀌었고,그들의 통일논리가 너무 낡아빠져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이론도 그렇지만 그들이 벌이는 시위가 단순한 학생운동이 아닌 폭력혁명을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등을 돌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한총련은 왜 낡아빠진 깃발을 다시 세우려 했던가.정국혼란을 틈타 세력을 규합하고 다시 80년대의 영광을 누릴 학생운동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탓이라 짐작된다.이야말로 환상이다.더 이상 타도해야 할 대상도 없고 체제와 반체제의 군사독재시절을 마감한지 이미 오래다.한총련의 착각은 여기에 있다.폭력시위시대는 마감됐다는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거나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이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학생운동은 제자리를 잡을 수 없다.

비록 늦었지만 한총련은 폭력시위와 구타살인에 대해 성실한 사과를 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그리고 지금껏 미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운동방식에 대해 보다 솔직한 반성을 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출발점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경쟁의 상대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바로 세계고,세계를 상대로 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우수인력이 되기 위해 대학은 촌음도 아껴써야 할 긴박한 때다.정치현실에 기웃거릴 겨를이 없고 경찰을 적으로 삼아 시위할 틈도 없다.

학생운동의 세계적 추세는 봉사활동이다.미국대학이 미국사회를 주도하는 지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확신도 대학생들이 벌이는 다양한 봉사활동 탓이다.열심히 공부하면서 사회 그늘진 곳의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체험하며 무언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데서 학생 스스로가 사회기여도를 높여간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폭력의 시대는 끝났다.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던 지난날의 학생운동은 이젠 여기서 끝장을 내야 한다.학생들 스스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남은 일은 학업에 전념하면서 학생운동의 방향을 봉사활동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에 힘을 기울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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