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 오가며 활동 중인 '기러기 엄마' 조혜련의 일본 생활 첫 공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성중앙조혜련이 일본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일본 NHK 방송의 고정 MC 자리를 꿰찼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현해탄을 건너며 한류 스타의 꿈을 키웠다는 그녀. 힘들 때마다 가족의 얼굴을 떠올렸다는‘기러기 엄마’조혜련의 특별한 도전기.

요즘 버라이어티 쇼에 막강 ‘아줌마’ 군단이 떴다. 이경실. 박미선. 조혜련 등 ‘아줌마’ 개그우먼들의 야무진 입담에 국민 MC 유재석도, ‘ 거성’ 박명수도 꼼짝을 못한다. 특히 이 중에서도 막내인 조혜련은 몸개그를 마다않는 열혈 아줌마. 내복 하나만 달랑 입고 영화 ‘반지의 제왕’ 의 ‘골룸’ 흉내도 내고, 무예타이 고수 ‘옹박’ 을 힘으로 제압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2년 전 갑자기 한국을 넘어 일본 코미디계까지 접수하러 나섰다. 그녀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국제적 인(?)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일본 진출 2년 만에 일본 NHK 방송에서 고정 MC를 맡았다. 사실 그녀의 일본 진출은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잘나가던 그녀는 왜 사서 고생을 했을까.

“2005년에 우연히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현지의 뜨거운 한류 열풍에 반했어요. 제가 원래 일을 잘 벌이기도 하고 싫증도 금방내는 타입인데 ‘어, 이거 언어만 좀 해결된다면 잘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쉬울 줄 알았죠. 그런데 죽을 것 같았어요.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까지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괴로워했죠.”

그녀는 매일 밤마다 자신과 싸웠다. ‘내일 당장 공항에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하지만 자리에 누우면 ‘조혜련? 아, 얼마 못 버티고 간 한국인?’ 이라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더군다나 데뷔한 지 10년이 훨씬 넘은 고참 연예인이 일본의 신인들도 다 버티는 어려움을 못 이겨낸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결국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버티다 보니 입과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방송 섭외 요청도 부쩍 늘어났다.

하루에 단어 100개씩 외우며 일본어와 일본 문화 완전 정복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을 넘었다 해서 일본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 와는 문화가 달랐다. 결국 그녀는 일본인 정서에 맞는 개그의 감을 익히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일본 문화를 몰라 생활 곳곳에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제가 일본에서는 신인이잖아요. 이제 겨우 알아보고 인사하는 정도니까. 매니저한테 수 시로 혼나요. 한 번은 고기 몇 점 집어 먹었다가 혼난 적도 있어요. 일본에서는 네 명이 고기를 먹으면 처음에 여덟 점을 굽고 그중 자기 앞에 놓인 고기를 두 점씩을 먹어야 한대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녀는 이제 일본 문화에 익숙해졌다. 방송 중 일본어로 애드리브를 하는 게 가능할 정도로 일본어 실력도 늘었다.

얼마 전 그녀는 자신의 일본어 학습법을 담은 책『조혜련의 박살 일본어』를 펴내기도 했다. 히라가나밖에 모르던 상태에서 하루에 단어를 100개씩 외웠다. 앞에는 한자, 뒤에는 히라가나로 써놓은 단어 카드를 들고 다녔다. 죽어도 안 외워지는 단어는 화장실에 붙여 놓 고 또 외웠다. “일본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후에는 바로 일본인 회화 선생님을 구했어요. 방송 스케줄 때문에 선생님이 저희 집으로 오셔서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세 시간씩 1년 동안 가르쳐주셨어요. 나중에는 제가 안방에서 자고 있으면 성큼성큼 들어와서 빨리 공부하자고 흔들어 깨우기도 했어요(웃음).”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쌓인 그녀는 얼마전부터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영어도 일본어를 공 부할 때처럼 무작정 외울 생각이다. 영어는 2년 안에 마스터할 계획. 자신이 말한 바를 과 연 이루게 될지, 2년 뒤 지켜봐 달라는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가족이 있기에 조혜련이 있다!
3~4년 뒤에는 미국 코미디 무대에 도전

조혜련은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힘이 들때면 두고 온 가족 생각 에 툭하면 눈물이 났다. 남편이나 아이들과 자주 만나지 못해 거리감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됐다. 특히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나이의 딸 윤아(10)와 아들 우주(8)를 생각하면 곁에서 챙겨주지 못하는게 늘 마음에 걸렸다. “지난주에는 10일 동안 비행기를 7번이나 탔어요. 아이들이랑 놀아줄 시간이 정말 없긴 해요.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돌보는 방법을 알았어요. 단 몇 시간을 함께 있어주더라도 잊지 못할 만큼 진하게 놀아주면 애들이 확 풀리더라고요. ‘ 엄마가 우릴 버린 게 아니구나’ 싶은 가봐요.” 그녀는 놀땐 확실히 놀아주고 혼낼 때는 무섭게 혼내는 타입이다. 놀자고 조를 때에도 ‘지금은 엄마가 바쁘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라고 딱 끓는다. 대신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혼내거나 강요한 적은 없다. 애들이 학교나 학원에 가지 않으려고 하면 ‘그럼 그만두든가’ 라고 쿨하게(?) 타이른다.

“얼마 전에는 윤아가 학교에 치마를 안 입고 가겠다고 울더라고요.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서 놀림을 좀 받은 모양이에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애들이 ‘조혜련 딸’ 이라고 따돌렸대 요. 얘기를 듣고 보니 맘이 아프더라고요. 윤아에게 웃으며 말해줬죠.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런 거니까 자연스럽게 이겨내야 할 과정’ 이라고.” 그녀는 연말에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며칠간 이라도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아직 일본 활동에 종종 불만을 표현하는 남편 김현기씨와도 좀 더 오붓한 시간을 보낼 계획. 얼마전 결혼 10주년 기념일에는 둘이서 연극을 한 편 보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는데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남편이 너무나 좋아하더란다. 무뚝뚝한 것 같아도 인터넷에 그녀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면 기사 밑의 덧글까지 프린트해서 보여주는 자상한 남편이다. 얼마전 남편이 일본어를 배운다고 했을때는 정말 감동했다. 남편은 그녀가 “왜 배우느냐” 고 묻자 무뚝뚝한 말투로 “당신이 나오는 방송이 보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가슴에 쿵하고 와닿는 그 말 한마디에 미안하고 또 고마워서 그날 참 많이 울었다.

그녀는 요즘 미안하고 고마운게 너무나 많다. 특히 옛날에는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정 말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게 다 일본 생활이 준 가르침이다. “그냥 도전하는 게 좋아요. 내가 꿈을 꾸고 노력하다 보면 누군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런 일들이 무척 재미있어요. 지금은 제가 아이들을 세세하게 돌봐주진 못하지만 바쁜 엄마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나도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올해 한류 팬을 위한 운동과 식사법 등을 담은 한일 합작 다이어트 비디오를 내놓을 예정이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하고 결과 를 만들어내려는 그녀답다. 욕심 많은 그녀의 다음 목표는 미국 코미디 무대. 어쩌면 수년 안에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입담을 선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윤혜진 기자

팟찌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