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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학생운동이 거듭나는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며칠전 비오는 날 아침 등교길의 캠퍼스 풍경은 살벌하고 음산했다.검은 색의 비옷을 위에 걸친 무장 전경들이 모든 차량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었다.차량의 혼잡속에 순번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그러면서 놀랐다.이것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참다운 모습일까.대학 정문주위에 포진한 전경들의 모습에서 나는 마치 나치스 시대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그날의 음산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곧 이어 한총련 출범식을 둘러싸고 당국의 원천봉쇄와 학생들의 대회강행이 격돌하면서 시내 곳곳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쌍방에서 수백명의 부상자가 나오더니 급기야 후진하는 가스차에 치여 전경 1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생겼다.숨진 유지웅(柳志雄)상경도 시위학생과 같은 군복무차 휴학중인 대학생이다.더욱이나 한양대 학생회관에서 근로자 1명이 맞아 숨진사건은 충격적이다.왜 우리는 아직도 이런 소모적인 대결을 계속해야만 하는가. 시민은 이제 학생운동의 폭력화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운동의 목적도,수단도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대다수 학생들의 마음마저 떠나고 있다.물론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을 생각할 때 한총련의 존재 그 자체를 공권력으로 부정하려는 당국의 태도도 1백%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그러나 폭력으로 이에 맞서는 것은 오직 자멸의 길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올해 12월의 대선에서 강력한 맞수로 예상되는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대표와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가 2일 각각 출연한 TV 토론에서 학생운동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그들은 다같이 학생운동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폭력사용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李대표는“학생운동 방향도 사회개혁과 변화의 원동력을 이루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문했고,金총재는“한총련은 국민지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시중의 합리적인 여론이 있다고 생각한다.학생운동을 둘러싼

의견차이는 다양하지만 여야 대표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사회개혁을 위해 학생운동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이런 기대에 부응해 학생운동이 다시 태어난다면 국민의 갈채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운동이

권위주의의 쌍생아로 변형된 것을 바로 잡는 일이 아닐까 한다.요컨대

전략이나 전술보다는 도덕성으로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어야

한다.학생운동은 오늘날 그 자체가 군사작전화한 느낌이다.그러나 설사

전술에 능란해 제한된 자원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더 큰 자원인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무엇하겠는가.결국 지는 게임을 하고 말 것이다.

도덕성을 얻으려면 힘은 힘으로 맞선다는 전투적 태도에서 벗어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려는 마음가짐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싶다.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이제 금물이다.학생운동은 원래 단식이나 토론,평화적 시위 등

비폭력주의의 전통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던가.그러나 이것이 80년대를

거치면서 잘못 변형됐다고 생각한다.때문에 전통의 재발견이 필요하다.자기

희생과 비폭력주의의 동양문화에 내포된 정치적 의미를 새롭게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무엇을 위한 운동인가를 명료히 밝혀야 한다.당국의 주장대로

친북한적인 노선의 운동조직이 아직도 낡은 이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학생운동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이 점이 모호한채로는 시민은

물론,학생들의 신뢰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만일 이것이 오해라면

진상을 밝혀 오해를 말끔히 씻어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자기 개혁과 성찰로 학생운동이 다시 시민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사람들의 삶을 중시하는 생활정치에 일단 눈을 뜨게 된다면

학생운동은 90년대의 지형에서 보다 생산적인 결실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한상진 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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