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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의 삶보고 작품구상 - KBS 주말극 '파랑새는 있다' 작가 김운경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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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다음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①MBC 한지붕 세가족②MBC 서울의 달③SBS 옥이이모④KBS 파랑새는 있다 답:방송작가 김운경(43.사진)씨가 쓴 서민들의 이야기. 변두리의 삶의 애환을 해학으로 엮어내는 김운경씨는 남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걸 한사코 꺼린다.그는 익명의 바다를 떠다닌다.서민들이 그러하듯 옷차림 또한 허름하다.그는 말한다.“나에게 부자들은 남의 나라 사람같고 가난한 이들은 내 식구같다.” 방송작가로서 주변부를 떠돌며 취재하는 김씨는 매스컴을 위해 사진찍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방송작가라는 신분이 드러나면 만나는 사람들이 진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다.작가로서의 취재활동에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서민'이라는 표현조차 버거운 사람들로 들끓는다.그의 친구들 중에는 실제로 KBS 주말극'파랑새는 있다'의 사기꾼.3류가수.차력사들이 있다.일반인들이“뭐 저런 일로 먹고 사나”하고 생각하는,그런 계층이다.그들은 모두 김씨가 먼저 나서 사귀기를 자청했던 사람들이다.그렇게 나선 이유가 뭘까. 김씨는 스스로도“잘 모르겠다”고 말한다.그러므로 그의 서민에 대한 동지애는 체질인 셈이다.

“글쎄,굳이 이유를 대자면 자란 환경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그가 태어난 곳은'좌천'(쫓겨다닌다는 동음이어의 운명적 우연!)이라는 해변마을. 원래는 경남이었지만 지금은 부산이 됐다.이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뒤 인천으로 집을 옮겼다.집안 사정으로 아버지를 남겨둔 채 어머니와 형제들만 새 터전에 자리잡았다.

어렵사리 구한 셋집은 부평의 시장터 한가운데. 억척스러운 어머니는 식당일과 미군부대 양공주들의 빨래를 해주며 생계를 이었다.중.고시절을 그런 곳에서 보내며 김씨의 서민적 정서가 싹텄다.

“가끔 집옆의 가내수공업 공장 여직원들이 우리집 담에 기대어 서로 신세한탄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오늘밤 당장 잘 곳이 없다고요.우리집도 가난했지만 그럴 때면 담너머로 돈을 던져주고 싶더군요.” 그런 정서가 김씨의 드라마 모태였을 터이다.

어느날 잡지에서 텍사스에서 뉴욕으로 온 청년의 좌절기를 그린 영화'미드나이트 카우보이'의 기사를 읽고“촌놈 상경기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한 것이'서울의 달'로 나타났다.

거기에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제비족이 등장했다.마찬가지로'옥이이모'나'파랑새…'도“변두리의 삶을 허투루 보지 않고 틈틈이 메모하고 이를 구상한 것”이 작품들이 나온 거름이 됐다.

김씨는 일단 나오는 사람들의 직업이 정해지면 실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달라붙는다.

'서울의 달'을 위해 그는 실제 용산에서'명예퇴직'한 제비족 출신 춤선생과 1주일을 같이 보냈다.“정말 춤도 배우고,또 그들 세계에 깊이 들어서려 같이 고스톱도 쳤지요.춤선생에게는'새 직장을 구하는 중인데 심심풀이 삼아 배우러 나왔다'고 말하고서요.” 춤선생이 한 말중 김씨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말이 있다.“정말 춤을 잘 추려면 이 스텝을 밟으며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가야 한다”는 것.여기에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 그 유명한 대사“서울,대전,대구,부산,찍고 터닝”이 만들어졌다.

김씨는 또 1주일간 차력사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기록했다.'파랑새…'를 위해서다.이 드라마에 나오는 밤무대 인생들은 친한 연기자들과 함께 다니며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실제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과 같은 직업을 갖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야 합니다.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지긴 하지만 이런 바탕이 있어야 자연스런 대사가 만들어지지요.” 드라마로야 시청자들에게는 환영받는 김씨지만 그러나 제작진으로부터는 원성을 듣는다.촬영 2~3일전에야 극본을 내놓기 때문이다.그의 독특한 스타일이지만 대본에 따라 무대장치와 소품을 마련해야 하는 제작진은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제작진중 한 사람은 심지어 이렇게 말하곤 한다.“대본 좀 빨리 주면 어디 덧나나.에이-씨.” 권혁주 기자

<사진설명>

방송작가 김운경씨의 히트작'서울의 달'과 현재 KBS2에서 방송되는'파랑새는

있다'엔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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