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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스타일리스트>과학경영 무장한 영화프로듀서 김인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송능한감독의 영화‘No 3’의 주연배우 한석규는 촬영 마지막날인 5월31일 놀라움을 표했다.“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는 한국영화도 있구나”라고.

놀라움은 사실 촬영 첫날부터 시작됐다.현장에서 한석규를 둘러싼 제작 스태프의 수는 일반적인 숫자의 절반도 안되는 40여명.이를 검은 선글라스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영화사 ‘프리시네마’를 운영하는 젊은 영화 프로듀서 김인수(36·사진).“영화는 제작 시스템이 핵심”이라는 주장아래 한국 영화제작에서 처음으로 과학적인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일정진행과 자금집행을 관리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지금까지 해온 주먹구구식 제작방식으론 한국영화는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시나리오가 다르면 제작일정부터 준비물까지 모든 것이 달라야 하는데도 예산서는 어느 영화나 비슷하다.그것도 단 한장이다.거액의 제작비를 쓰고도 결산서 한장 없다”는 말로 그 실태를 요약한다.이런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인 운영방식으로는 투자자도 붙지않고 노력이 영화의 질로 연결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할리우드 영화의 대규모 생산체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는게 그의 이야기다.미국의 독립영화만 해도 예산서는 보통 1백장에 이른다.시나리오를 분석해 세세한 지출내용까지 모두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지출계획은 곧 촬영등 작업공정과 연결돼 모든 제작일정이 꼼꼼하고 합리적으로 잡혀나온다.이는 투명한 내용의 결산서로 이어진다.

김인수는 이런 과학적인 경영방식을 통해서만 소자본 중심의 한국영화가 살 수 있다고 믿는다.영화가 비록 예술이지만 자금이 투입되고 나중에 흥행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하나의 산업이기 때문에 회계부터 시작해 모든 제작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게 그의 신념이다.그래야 감독도 맘놓고 자신의 영화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프로듀서가 산업적인 측면에서 영화제작의 하드웨어를 담당하고 감독은 소프트웨어인 영화세계를 자기 목소리로 그려내는 분업체계’를 지향한다.프리시네마의 창립작품으로 지난해 개봉된 ‘정글 스토리’를 만든 김홍준감독과 7월 개봉 예정인 2호작 ‘No 3’의 송능한감독은 공통점이 있다.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가 분명한 감독인데다 만들 영화의 시나리오를 들고 왔다는 점이다.마케팅을 통해 관객의 입맛을 알아보고 흥행이 될만한 내용과 시나리오를 찾은후 감독을 구해 촬영을 의뢰하는 일반 기획영화들과는 분명 다르다.그야말로 감독 중심의 영화 제작인 것이다.

김씨는 말 그대로 영화계의 바닥을 죄다 훑었다.80년 서울대 영화서클 얄라셩 가입을 시작으로 서울영화집단·정일성 촬영감독 문하·SBS프로덕션·강우석 프로덕션·김의석필름,그리고 지금에 이르는 17년. 젊은 김인수가 나이에 비해 간단치 않은 영화이력 끝에 내놓은 ‘시스템 영화’.그의 작업에 ‘대충 대충’에 익숙한 우리 영화계는 지금 긴장하고 있다.누구에게 갈채가 쏟아질지….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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