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생명의 소중함 일깨워준 헌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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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라디오를 즐겨듣는 나는 어느날 아주 가슴 따뜻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백혈병에 걸린 한 소녀의 친구가 그녀의 딱한 사정을 적어 보내 사연이 소개된 후 전국에서 그 소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헌혈증서들이 방송국에 몰려들었다는 것이다.나는 이 소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헌혈을 생각하면 무섭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크고 굵은 바늘을 통해 나의 일부인 혈액이 빠져 나가는 것을 본다는 것이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얼마전 용기를 내'헌혈의 집'에 갔다.처음에는'얼마나 아프길래 사람들이 없을까?'하고 생각했는데 간호사 언니는 평일에는 사람이 적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헌혈을 원하는 중.고생들이 무척 많다고 했다.

혈압과 혈액형 검사를 마친뒤 간호사 언니가 길고 굵은 바늘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잠시후 내 팔뚝의 혈관에서 붉은 피가 뽑아져 나왔다.이날의 헌혈전까지만 해도 보통 TV나 책에서 보았던 헌혈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혈장만을 분리해내는 헌혈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헌혈은 군대나 학교같은 곳에서 많이 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이 공급되지만 혈장과 같은 특정 성분은 너무 부족해서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온다고 한다.그래서'헌혈의 집'에서는 위험이 적고 쓰임새가 많은 혈장을 뽑는다고 했다.붉은피 속에서 보리차같이 투명한 성분이 고스란히 분리돼 나온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물론 생물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다 나의 피라는 애착심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간호사 언니들이“혈장이 매우 맑고 깨끗하구나”하고 칭찬까지 해주는 바람에 헌혈을 하고 있는 동안 계속계속 내 자신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피를 다 뽑고 난뒤 내 팔뚝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바늘자국이 나 있었다.나는 이 자국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지혈을 위해서 계속 누르고 있으라는 간호사 언니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래 들여다 보곤 했다.'나수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또렷이 적힌 헌혈증서를 받아들고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친구들에게 생명을 되살리는'바늘자국'을 자랑하고 싶은 벅찬 설렘과 함께….나수영〈전남목포시산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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