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명제 보완.자금세탁 방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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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자부해온 금융실명제가 대대적인 수술대에 올랐다.강경식(姜慶植)부총리가 정치권의 요구를 수렴해 주도해온 실명제보완작업은 실명제의 완화와 자금세탁방지법의 제정으로 요약된다.이번의 입법작업은 실명제가 국민에게 불안감과 불편을 주고 소비를 조장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지만 당초의 근본취지는 살리면서 보완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에 새로 도입된 자금세탁방지법안은 금융실명제하에서도 금융기관을 통한 부정과 비리의 방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나 그 내용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우선 정부가 당초 검토했던 고액 현금거래에 대한 국세청과 검찰 등 관계기관 통보제도가 빠져 법의 범죄예방기능이 없어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 조항이 금융거래를 위축시킬 것같아 뺐다는게 당국의 설명인데 현금거래가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단순히 5년간 기록을 보관하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의문이다.또한 검찰이나 세무관서가 업무상 필요시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라 기록.보존된 현금거래정보를 열람.등사할 경우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없이도 요청만으로 열람이 가능토록 한 것은 예금자의 비밀보장을 크게 후퇴시킨 조치다.

더구나 자금세탁방지법이 금융기관을 이용한 불법정치자금의 세탁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두면서 현행 정치자금법이나 형법에는 대가성이 없는'떡값'을 처벌할 규정이 없어 새로운 조항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특히 한보사태 이후 불거진 정치인의 이른바 떡값에 대한 국민정서를 보거나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혁하자는 최근의 강한 여론에 비춰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보완입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실명제를 대통령긴급명령이 아닌 통상법률로 입법화하는 것은 시의적절하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부작용이 있거나 국민생활의 불편을 주는 점은 마땅히 보완해야 한다.그러나 실명제보완과 균형을 맞춰야 할 자금세탁방지법의 범죄예방기능이 당초보다 크게 후퇴한 점은 입법과정에서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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