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스포츠 뉴 리더 ⑥ 김일순 삼성증권 테니스 감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일순 삼성증권 감독은 이제 남자로 영역을 넓혀 ‘제2의 이형택’을 키워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호형 기자]

 테니스가 64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1988년 서울 올림픽.

테니스 여자단식 2회전에서 개최국의 19세 선수가 당시 세계 랭킹 8위의 헬레나 수코바(체코)를 꺾었다. 새카만 얼굴에 ‘바가지 머리’를 한 이 한국 선수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코바가 발목이 아팠나? 왜 이겼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 선수가 바로 김일순(40) 삼성증권 테니스 감독이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불모지였던 한국 여자 테니스의 기린아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삼성증권 감독으로 임명됐다. 갓 40세의 여성이 한국 테니스를 대표하는 삼성증권의 감독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선수 시절에도, 감독으로서도 모두 한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김 감독의 테니스 인생은 독특하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꼴통 선수’라 설명했고 “지도자가 된 이후에 테니스를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수보다 짜릿한 지도자 생활

김 감독은 94년 선수 생활을 접고 “테니스 관련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던 김 감독을 96년 주원홍 삼성물산 감독(현 삼성증권 명예감독)이 불렀다. 주 감독은 “고등학교 2학년 유망주 조윤정(현 삼성증권 여자 코치)을 지도할 코치가 필요한데 네가 적임자다. 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백수’ 생활에 지쳤던 김 감독은 그 자리에서 코치직을 수락했다. 이후 13년째 지도자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김 감독은 조윤정과 함께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무대를 누볐다. 조윤정은 한국 여자 최고 랭킹인 세계 45위까지 올라갔다. 박성희·전미라 등도 키워냈다. 김 감독은 “난 선수 시절 제 멋대로였는데, 제자들은 모두 착하고 성실하다”며 웃었다.

◆시행착오 거쳐 더 강해질 것

한국 테니스의 과제는 이형택(33·삼성증권)만 한 스타를 또 키워내는 것이다. 과거 주니어 랭킹 상위권에 올랐던 유망주 김선용(22·삼성증권)과 전웅선(23)은 시니어 무대에서 고전하고 있다. 김 감독은 김선용과 전웅선에 대해 “주니어 랭킹이 좋다고 지도자들이 함께 흥분한 게 잘못이었다. 절실함을 심어 주는 게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이형택의 성공 요인을 다시 배웠다. 1승에 목말라 하고, 좋은 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노력이다. 김 감독은 “아직 선용이와 웅선이 모두 젊다.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여중생 유망주 장수정(14·안양 서여중), 이소라(15·원주여중) 등을 후원하고 있다. 김 감독은 “기술이 뛰어난 조윤정 코치가 이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시들지 않는 열정과 시행착오를 거친 관록으로 무장했기에 더 자신감 있는 목소리였다.

결혼 계획을 묻자 김 감독은 “지도자 생활 12년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흘러갔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은경 기자 , 사진=이호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