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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규제완화와 감독강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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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제위기.한보사태.김현철사건등으로 한국의 정치.사회적 혼란이 해외 매스컴에까지 자주 거론되는 우울한 봄을 우리는 지나고 있다.그러나 현 내각이 과감히 추진중인 규제철폐와 금융개혁이 성공적으로 성취될 수만 있다면 1997년은 반드시 불행한 해만이 아니라 2000년대를 눈앞에 둔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원년(元年)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껏 규제의 왕국에서 특권을 누려왔던 이해당사자들의 밥그릇싸움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음은 비록 예상됐던 수순이라 하더라도 역시 국민에게는 역겨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 관료들의 반발과 저항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이들이 자기 이해관계를 수호하는 투쟁에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 모든 수단과 방법들을 다 동원할는지 모른다.그러나 30년 관치금융으로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연쇄부도에 시달리고,많은 재벌그룹들마저 국내언론들이 아무리'협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취약한 재무구조가 거의 한계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국제금융계에서는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는 형편이다.재경원과 한국은행이 금융감독권을 놓고 힘겨루기에 바쁠 때 우리나라 은행들의 부실여신은 공개된 통계인 총여신의 0.8%가 아니라 15%에 육박해 국제적 평가기준으로 보면 자기자본금이 마이너스에 달한 셈이다.

세계 최대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들의 신용도는 최하낙제점인 D등급 이하의 수가 23개 은행으로 21개의 낙제점 은행을 가진 브라질을 제치고 후진국들 중에서는 첫번째의 영예(?)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의 금융위기를 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 과감한 규제완화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그러자면 우선 우리가 지난 30여년간 정부주도하의 압축성장기에 채택했던 경제활동의 인허가주의에서,일단 필요한 자격요건을 충족하면 금융업을 위시한 모든 기업활동의 진입과 퇴출이 자율화되는 준칙주의.신고주의로 전환돼야 한다.신규은행과 금융회사들의 설립.합병을 자율화하고 새 점포와 지점설치및 새 금융상품 개발을 경영자들의 책임에 맡김으로써 우리 금융계도 진정한 경쟁으로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의 양과 질을 향상시키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인허가 위주의 한국경제가 많은 규제 때문에 신규투자의 부진과

국제경쟁력 약화,부패와 뇌물의 만연,사회기강의 와해를 가져왔음을 목격해

왔다.그래서 참다운 국제적 시장안목과 경영능력을 갖춘 기업가들보다

관료들에게 로비를 잘하는 사이비 경영인들이 더 위세를 부려왔던게 현실이

아닌가. 우리나라 경영자들 중에는 일본과 프랑스처럼 전직 정부관료들이

너무도 많다.그러나 전.현직 관료들의 횡포에 시달려온 일본과 프랑스 경제는

90년대에 들어와 선진국들중 가장 어려운 여건 속에 허덕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무디스 신용조사에 따르면 D등급 이하 은행 수가 58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일본이며,프랑스는 선진국들중 가장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는 일본과 프랑스식 관료중심 경제운용에서 미국과 영국처럼 자율적

기업경영체제로 하루 빨리 풍토를 바꿔야 한다.그러나 규제철폐와

경제자율화가 곧 무법과 무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규제완화에

수반해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것은 감독강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라

하겠다.지금 많은 선진국에서'예방적 감독'이란 개념이 크게 부각되고 있음은

무리없는 경제 자율화를 위해선 전문화된 감독기능 강화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년전 영국의'빅뱅'은 금융 활성화.국제화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시의적절한 감독기능의 정비.강화에는 실패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그리하여 91년 BCCI은행과 95년 베팅즈은행의 파산등 큰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영국의 새 노동당 정부는 이번에 중앙은행에는 독일처럼

금융정책의 전권을 재무부에서 떼어내 맡기는 대신 금융감독업무는 위상이

강화되고 확대개편된 증권투자이사회(SIB)로 일원화시켰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 크다 하겠다.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大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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