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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그들만의 잔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7호 35면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 넘게 ‘농협 개혁’ 기사를 써왔다. 그러다가 이달 초 취재원으로부터 12일 농ㆍ수협 개혁 관련 세미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세미나 시간과 장소를 미처 메모하지 못했다. 하지만 농협 개혁이 주요 현안인 만큼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금방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誤算)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 유관기관 홈페이지들을 둘러봤지만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취재원에게 전화로 물으면 간단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찾기 힘드나’ 하는 생각에 혼자 힘으로 끝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검색 경쟁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인터넷을 뒤진 끝에 가까스로 찾아냈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농식품부 차관의 일정 속에서였다.

오산은 또 있었다. 세미나 장소인 서울 양재동 aT센터(농수산물유통공사)로 향하면서 세미나장 분위기가 썰렁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이 정도로 일반인에게 행사 홍보가 안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aT센터 중회의실 250석의 자리는 꽉 차 있었고 통로까지 의자를 놓아야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농협ㆍ수협ㆍ산림조합ㆍ농림어업인단체 등 유관기관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날 세미나는 농협 개혁의 좌표와 향후 과제를 감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원철희 전 농협중앙회장이 기조연설을 시작하자 전국농협노조가 원 전 회장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원 전 회장은 최근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경제적 약자의 자주적 연합체인 농협에 노조가 있다는 건 희한한 일이다. 노총 내부에 노조가 있는 격이다”며 농협 내부에 5개나 난립한 노조의 문제를 제기했었다.

농협의 ‘허수(虛數) 조합원’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서 농협 개혁론자들은 240만 조합원의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날 김상현 목포수협 조합장은 무자격 조합원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조합원에서 배제해야 한다. 수협에 가입한 어민 중에 약간의 논농사를 하거나 가축을 키운다고 농협(축협 포함)에 가입하고, 산림조합에도 들어가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면서 철 따라 여러 협동조합에서 정책자금을 타간다. 조합원 자격을 강화하고 주 소득업종 관련 조합에만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 최양부 전 청와대 농림수석비서관도 본지 인터뷰에서 “도시와 농촌 농협의 ‘억지 회원’을 일제 정비해야 한다. 이제 농협은 진실 위에 서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농협과 직·간접 이해관계를 가진 참석자들이 많은 탓인지 이달 초 발표된 농협 개혁안에 반발하는 장면도 많았다. 일부 토론자는 “회장 권한을 없앴는데 직선제까지 손볼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청중으로 참석한 한 조합장은 “자율 조직인 협동조합의 개혁을 조합원도 아닌 토론자들이 왜 간여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세미나 좌장 역할을 맡은 황민영 국민농업포럼 상임공동대표는 “농협은 농민의 농협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농협이다. 일반 국민도 농특세를 내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중앙SUNDAY는 농협 개혁이 좌절된 이유로 임직원의 이기심이나 정치권 이해관계 등을 지적해 왔다. 하지만 이들이 잇속을 챙길 수 있는 배경에는 일반 국민의 무관심이 작용하고 있다. 국민은 매년 3조7000억원의 농특세를 부담하고 수백조원의 농정 지원 자금을 대왔다. 그런 만큼 날카로운 감시의 눈길이 필요하다. 농협 개혁이 흐지부지되고 그들만의 잔치가 계속되는 걸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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