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 보고도 궁금해지는 배우의 매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7호 03면

지금은 ‘유하의 페르소나’가 됐지만 전작 ‘비열한 거리’(2006)에 조인성(28)을 캐스팅하는 것은 “모두가 뜯어말리는,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유하 감독은 회상한다. 당시 조인성은 TV 스타로는 성가를 올리고 있었으나 영화는 줄줄이 ‘말아먹은’ 형편이었다. 게다가 모델 출신 꽃미남 계보의 그와 조폭 역은 괴리가 심했다. ‘봄날’ 등 조인성 멜로의 광팬이었던 유 감독 부인의 ‘강추’가 없었다면 두 사람의 오늘은 없었을지 모른다.

영화 ‘쌍화점’ 흥행의 핵 조인성

‘비열한 거리’를 찍던 어느 날 식당 TV에 조인성의 옛 영화가 흘러나왔다. 유 감독은 식사를 멈추고 “저 영화 봤다면, 너 캐스팅 안 했다”고 했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하지만 둘의 조합은 기대 이상이었다. 유 감독은 조인성에게서 ‘꽃미남을 넘어서는 비극성’을 끌어냈고 ‘배우’ 타이틀을 안겨줬다. 유 감독은 동시에 스타성과 열정, 각별한 의리를 두루 갖춘 명파트너를 찾았다.

이 두 사람이 다시 의기투합한 ‘쌍화점’은, 유 감독에 따르면, “조인성의 연기 열정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영화”다. 초반부 노골적 동성애 장면을 대본으로 보고 “상징적으로 처리하면 안 되겠느냐”고 딱 한 번 난색을 표했을 뿐 묵묵히 감독의 뜻을 따랐다.“인성이가 나를 너무 믿어줘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의 전라 섹스신을 찍고 나서는 잠 한숨 못 자고 촬영장 근처 강가를 거닐었다. 배우 이전에 CF 스타이기도 한 그를 이렇게 육욕적으로 확 벗겨도 되나, 감독의 욕심과 팬들의 반발 사이에서 갈등했다.”(유하)

조인성의 아낌없는 분투에 힘입어 ‘쌍화점’은 올겨울 가장 뜨거운 영화의 하나가 됐다. 개봉 3주차에 들어서며 3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수위 높은 노출, 동성애 소재라는 ‘호객 요인’도 있지만 탄탄한 이야기의 힘, 자기 한계를 불사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동력이라는 평가다.

조인성의 출세작은 SBS ‘발리에서 생긴 일’(2004)이다. 가난한 연인에게 저돌적으로 구애하다 결국 파국을 맞는 재벌 2세로 나왔다. 여기서 그는 지금도 가끔 코미디에서 패러디되는 조인성표 눈물 연기를 선보였다. 사랑 때문에 펑펑 우는 예쁜 남자라는 캐릭터는 마초들에게 식상한 여성 관객을 매혹시켰다. 여자 뺨치는 고혹적인 외모에 슬프면 아이처럼 우는 어린 남자. 거기에 수퍼모델급 ‘기럭지’와 탁월한 패션 감각은 새로운 남성형을 창조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조인성에서 강동원·공유·주지훈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간지작렬 꽃미남’ 계보의 탄생이다(이 드라마의 상대 역이었던 하지원이 조인성·강동원·공유와 함께 부산 바닷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네티즌은 하지원을 ‘전생에서 나라를 구한 여인’이라고 불렀다. 전생의 큰 공으로 꽃미남들에게 둘러싸이는 지복을 누린다는 뜻의 장난스러운 표현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로 인기 정점에 선 그가 ‘비열한 거리’로 달려간 것은 의외였다. 스크린에서도 샤방샤방 로맨틱 판타지를 기대한 여성 팬들에겐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결과는 좋았다. 유 감독은 심지어 게이라는 소문을 달고 다닐 정로도 곱상한 그를 조폭에 캐스팅하며 이미지를 비틀었다. 유 감독은 ‘쌍화점’에서도 게이 커플 중 조인성을 남성, 주진모를 여성으로 설정했다고 말한 바 있다.

유 감독은 조인성에 대해 “아직 삶의 연륜을 완전히 녹여 내진 못하지만 20대 톱 중 가장 진심 어린 연기를 한다.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적 자세, 영화적 감정과 정서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마스크가 강점”이라고 평했다. 또 “‘쌍화점’에 클로즈업이 많은 것도 그가 클로즈업을 견디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정령이 있다’는 의미에서 진짜 포토제닉한 배우다”라고도 했다(그의 마지막 말은 “아름다운 배우는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감정을 자아낸다”는 이명세 감독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유 감독은 “조인성의 얼굴은 선과 악이 공존해 감독에게 영감을 준다”며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느끼는 쾌감을 관객도 느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는 연기력보다 외모로 더 크게 평가되는 배우지만, 그 또한 단점이라기보다 장점이다.

조인성은 ‘쌍화점’을 끝으로 군에 입대한다. 인기 정상 CF 스타로서 쉽지 않은 노출을 감행했고, 행위가 아니라 감정이 중요한 정사신을 찍었으며,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억누르는 절제 연기에 도전한 작품이다. 군 복무를 마치면 그에겐 30대 연기자의 길이 열린다. ‘쌍화점’의 노출을 두고 스스로 “더 이상 보여 드릴 것 없이 다 보여 드렸다”고 부끄러워했지만 천만에. 그것은 수사일 뿐 그는 아직 채워 가고 보여 줄 것이 너무 많은 미완의 배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