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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 판타지의 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7호 07면

T.O.P이 더 좋다고 해야 하나 G-드래곤이 더 좋다고 해야 하나. 아이 따라 가요 프로그램 보다 아이돌 그룹의 팬이 돼버린 마흔 넘은 엄마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고민 중이다. 동방신기 유노윤호의 파워풀한 춤을 보고는 그 친구한테도 혹해버렸다. 원더걸스의 ‘노바디’와 소녀시대의 신곡 ‘Gee’를 들으면서는 귀에 착착 감겨오는 멜로디와 두 번 듣고 가사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중독성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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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시하기만 했던 그들이 음률과 스타일의 완벽한 전략으로 대중을 휘어잡는 파워를 성큼성큼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젠 아이돌 그룹들이 특정 세대를 위한 ‘그들만의 우상’이 아니라 대중음악계로의 부담스럽지 않은 접근을 이끄는 파워풀한 주인공이 됐음을 실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긴 불황의 터널을 뚫고 회생의 불씨를 지핀 가요계의 원동력은 바로 아이돌 그룹이었다. 왕비호의 비웃음을 샀던 동방신기의 팬들이 무려 50만 장의 앨범을 팔아 치우면서 한 산업계의 생명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과시했다. 대세는 아이돌인 것이다.

부진하다는 드라마계는 어떨까. 뒤늦게 아이돌 세대의 젊고 풋풋한 아름다움과 에너지에 빠져버린 이 40대 엄마에게 ‘꽃보다 남자’의 꽃미남 아이돌 판타지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중이다.

1990년대 바쁜 직장생활 하느라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하긴 했지만 그 명성은 들어 알고 있던 바, 그럼에도 드라마로 확인한 이 원작의 내공은 가히 폭발적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클리셰란 클리셰는 전부 다 동원하고, 초특급 일류 울트라 호화 문화로 구름에 두둥실 뜬 듯한 상류 사회 환상의 세계에서 꿈꾸게 만들고, 거기에 초현실적인 외모의 우수 젖은 바이올리니스트와 거칠지만 순정파인 남자 주인공에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하게 버티는 캔디형 주인공까지. 유치하다거나 비교육적이라거나 하는 비난의 언어들이 이성을 간질이더라도 끝까지 뻔뻔하게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캐릭터들만으로 완성된 이 흥미로운 콜라주들은 그 몽롱한 판타지의 세계에서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어 보인다.

첫 회부터 스피디하게 갈등의 대립각들을 세우고, 복합적인 러브 트라이앵글 구도를 형성하고, 거기에 강약을 조화롭게 배치한 남녀 캐릭터들의 구성까지 선보인 ‘꽃보다 남자’에는 힘들일 필요 하나 없이 스르륵, 자연스럽게 몰입이 가능하다. 이래서 중국·일본·한국을 오가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나 싶다.

특히 “나에게 그렇게 유난히 폭력적이라니, 그 애는 나를 좋아함에 틀림없어” 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준표(이민호) 캐릭터의 유머러스한 매력은 끝내준다. 아무리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자꾸만 눈이 가는 비현실적인 초강력 꽃미남 김현중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적역을 맡았다. ‘하숙범’ 범이가 이렇게 멋지게 생긴 남자인 줄도 처음 알았다. 다소 덜 익숙한 스타들을 동원해 꽃미남 4인방 역할을 맡긴 건 약간의 신비감을 더하며 제대로 적중했다.

겨울방학을 맞은 학생층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시청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꽃남’은 드라마에서도 아이돌 바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물론 초특급 호화판 드라마에 가당찮은 빈티 나는 CG와 화면들이 간혹 눈을 거슬리게 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판타지 하이틴 로맨스에 암담한 현실은 잊고 두둥실 구름을 탄 듯한 느낌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에 당분간은 이 드라마를 즐기며 살 것 같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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