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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 칼럼

모든 길은 로봇으로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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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도대체 어떤 기능이 이 친구를 ‘휴대전화 삼매경’에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그가 전하는 가장 신나는 기능은 명함과 일정관리라고 한다. 새로운 명함을 받아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찍으면 문자인식이 돼 그대로 연락처에 등록된다. 새로 기록된 연락처는 사무실의 컴퓨터에 연동돼 연락처 업데이트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일정관리 또한 아무 곳에서나 등록해 컴퓨터에 연결하면 자동으로 등록되기 때문에 비서가 하던 역할을 손쉽게 대신하는 것이다. 이제 곧 탁상 다이어리나 명함첩이 쓰레기통으로 사라지게 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휴대전화를 통한 디지털 컨버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이렇게 똑똑하게 진화한 것은 거기에 추가된 여러 센서들과 네트워크 인프라 덕분이다. 마이크를 이용한 음성 인식뿐만 아니라 만지면 반응하는 햅틱 기술에 이르기까지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능이 가능하게 되었다. 통신기술도 휴대전화라는 기기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강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계의 미래는 도대체 어떻게 발전해 나갈까, 10년 후에도 휴대전화가 인간 생활의 중심으로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1세기는 20세기와는 확연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개되고 있다. 20세기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에너지 소비, 과학기술의 발전 등 엄청난 ‘양적인 변화’가 이뤄진 시기였다. 21세기는 지난 세기에서 간과되었던 인간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질적인 변혁’의 시대다. 대표적인 것이 줄기세포로 대변되는 생명과학,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과학, 그리고 반도체 산업 등의 근간을 이루는 나노과학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이 우리의 생활환경을 보다 가시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이들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인공지능을 이용한 지능로봇 기술이다. 인간이 창조한 물건에 ‘인간성’을 부여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스러운 소통을 가능하게 해 인간에게 좀 더 편리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지능로봇이 현재의 휴대전화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훌륭하게 이어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 휴대전화가 가질 수 없는 지능로봇의 두 가지 기능 때문이다. 첫째는 로봇의 적극적인 서비스 기능이다. 휴대전화는 필요할 때 내가 찾으러 가야 하지만 로봇은 나에게 스스로 다가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몸이 아플 때 약 먹을 시간을 기억해 나에게 다가와 알려줄 수도 있고 피곤할 때는 심부름이나 설거지도 대신할 수 있다. 둘째 기능은 인간적인 소통이다.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갖고 인간이 가진 오감의 기능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가능한 새로운 동반자가 될 것이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개인화가 뚜렷한 현대사회에서는 인간들의 소통을 돕는, 그리고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로봇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말상대가 없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벗이 되고, 때에 따라서는 결리는 팔다리도 안마해줄 수 있는 든든한 친구의 역할 말이다.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갈 수 있다.

“이번에 로봇 바꿨다며. 너무 자주 바꾸는 거 아냐?” “신제품 나왔잖아. 기능이 너무 마음에 들고, 기기변경 보조금 준다고 하기에 바꿨지.”

김문상 KIST 지능로봇 연구센터장

◆약력: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공대 로봇공학 박사. KIST 지능로봇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