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오락가락하는 司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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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가 대대적인 사정(司正)을 예고했다가 야당 반발에 부닥쳐 뒤로 물러섰다.청와대 민정수석이 야권의 광역단체장을 포함,1백여명을 내사하고 있다고 밝힌지 불과 며칠만에 같은 입으로 이를 전면 부인했다.정무수석은 야당관계자들을 찾아 해명을 하며 뒷수습에 몰두하고 있다.우리는 청와대의 이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여권 수뇌진들이 과연 이 나라를 끌고 갈 자질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가 대두됐을 때 우리는 본란을 통해 사정(司正)의 정치화를 우려하며 일상적이고도 조용한 사정을 촉구한 바 있다.비리가 발견되면 그때그때 처벌하면 될 일이지 강조주간을 설정해 무슨 행사를 하는 식이 돼서는 안되고,야당도 정치공세로 사정을 덮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그러나 결국 야당의 대선자금공세에 굴복해 없었던 일로 되는듯 싶다.

그렇지 않아도 한보사건과 임기말이 겹쳐 정부권위의 누수현상이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마당에 야당의 정치적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정부가 백기를 든 꼴이 되었으니 앞으로 무슨 힘과 명분을 가지고 남은 임기를 끌고 갈 수 있을지 한심할 뿐이다.사정을 한다,안한다로 일관성을 잃었으니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고,있는 비리까지 정치공세에 밀려 덮고 갈판이니 앞으로의 법집행이 제대로 되겠는가. 문제는 대선자금 공개여부에서 비롯됐다.청와대가 대대적 사정을 예고한 시점이 대선자금 비공개방침 결정시기와 일치한다.결국 청와대가 사정을 대선자금덮기에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을만 하다.야당 역시 대선자금공개를 무기로 사정의 칼날을 피했다. 사정(司正)은 사정이고,대선자금은 대선자금이다.그러나 여야가 모두 비리척결이라는 문제를 정치적 이슈인 대선자금과 결부시켜 이용한 꼴이다.비리가 있다면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다.정치공세로 정부의 임무를 포기한다면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질 뿐이다.야당 역시 정치공세로 비리를 덮으려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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