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업들 외형 부풀리기 극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불경기속에 매출감소와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은행대출한도를 유지하기 위해 매출액을 편법으로 부풀리는 경우가 부쩍늘고 있다.

한보사태 이후'준법대출'에 나선 은행의 여신심사과정에서 대출이나 할인어음한도를 더 많이 배정받으려면 무리하게 매출을 늘려서라도 성장성평점을 후하게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심할 경우 유령업체를 차리거나 폐업회사를 인수해 가공(架空)거래관계를 꾸미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도금업체 C사의 某사장은 얼마전 친척과 짜고 친척이 경영하는 회사에 대해 장부상으로 매출채권을 늘려 은행으로부터 어음할인한도를 높게 배정받았다가 들통이 나 한도축소조치를 받았다.

음료업계 A사의 경우 올해초 은행에 대출신청을 냈다가 매출부진을 이유로 한도가 깎이자 대리점출고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해 단시간내 외형을 늘렸다.이 회사는 재신청한 여신심사에는 유리한 평점을 받았지만 수익구조는 오히려 나빠진 케이스. S은행 관계자는“기업들이 무리하게라도 외형을 늘린뒤 여신 또는 보증심사를 신청하면 자칫 적정수준보다 많은 자금이 지원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매출을 줄여 이익을 늘린 기업들이 은행의 매출액중심 여신심사제도 때문에 골탕을 먹고 있다.

중견섬유업체 C사는 지난해부터 수익이 좋지 않은 면방사업을 정리하고 부직포를 주력사업으로 돌렸다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당장 회사의 수익성은 좋아졌지만 총매출은 전년보다 15%정도 줄었고 이 바람에 갑자기 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금을 일부 갚으라는 압력을 받게된 것이다.외형이 줄어들어 성장성면에서 나쁜 평가를 받았고 이에 따라 대출한도를 줄였다는 것이 은행측의 설명이다.

은행들의 외형중심의 여신심사는 C사처럼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부진한 사업을 줄이면 내실이 좋아지는데도 일시적으로 매출이 줄어들어 은행돈 빌리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계에서는 과거의 양적(量的)변수보다 수익성.재무구조.경쟁력등 질적변수를 중시해 여신심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남윤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