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경제외교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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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필리핀 마닐라에서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태평양경제협의회(PBEC)는 비즈니스 외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줬으나 우리나라는 민.관 총체외교의 부재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무척 큰 행사였다.

PBEC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간 경제계 모임이지만 이번 행사에는 각국에서 기업인은 물론 정부 고위 관료들도 대거 참석했다.태국.말레이시아.중국 등에서는 부총리가 참석했고,콜롬비아는 외무장관.에너지장관을 보냈다.또 칠레.인도에선 재무장관이,에콰도르에선 무역장관이 참가했으며 각국의 국.과장급 실무자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PBEC 전체회의는 물론 기술.환경.투자 등을 주제로 열린 각종 분과회의에도 참가해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우리나라는 이 회의에 42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20개 PBEC 회원국중 미국.일본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규모다.

한국대표단은 한보사태 등으로 실추된 한국경제의 대외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한국경제의 홍보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사전에 세웠다.이에따라 이번 총회에도 조석래(趙錫來)효성그룹회장이 첫날 개막회의에서 강연하는 등 8명이 각종 회의의 연사로 나서 20개 참가국중 연사수로는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런데 42명의 한국대표단중 정부인사는 장.차관은 물론 정부부처 국.과장급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단 한사람도 없었다.이 때문에 일부 한국대표단 사이에서는'우리는 서자(庶子)'라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정부는 이에 대해 얼마전 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가 열린 만큼 이번 행사는 특별한 현안이 없는데다 순수한 민간경제인 모임이어서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또 재계에서 동참의사를 타진해오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그러나 이는 민.관이 힘을 합쳐 총력외교를 펼치는 외국과 비교할 때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특히 요즘은 한보사태 등으로 땅에 떨어진 국가적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외교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본다.

주최국인 필리핀의 경우 피델 라모스 대통령이 개막식 전날부터 각국 기업인들을 말라카냥궁으로 초청해 오후11시까지 만찬을 함께 하는등 진두지휘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민간경제계 모임에까지 정부각료를 파견하는 나라'와'자기나라에서 열리지 않는다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한국'.어느나라가 더 경쟁력향상에 도움이 될지는 자명하다.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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