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출신 이회창 vs 검사 출신 홍준표 ‘미네르바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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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선 그를 최고의 법률가 중 한 명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검사 출신이다. 그가 수사한 슬롯머신 사건이 드라마 ‘모래시계’의 소재가 된 적이 있다. 그가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는 이유다.


두 사람은 그러나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구속이 타당한지를 놓고 서로 정반대 의견을 내놨다. 각각 소속당의 회의 석상에서 공개 발언을 하는 형태를 통해 사실상의 법리 대결을 벌인 셈이다. ‘형식적 법치주의’ ‘실질적 법치주의’ ‘내재적인 한계’ 등의 전문 용어도 동원했다.

단초는 이회창 총재가 제공했다. 그는 11일 당 5역회의에서 “실정법에 위반되기만 하면 처벌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의 유물”이라며 “우리는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가려서 처벌을 결정하는 실질적 법치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두 가지 허위 사실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하는 건 실질적 법치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박씨의 구속이 과도한 법 적용이란 취지였다. 그는 과거에도 “교통경찰이 특정인만 골라 적발한다면 그 경찰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법의 목적은 정의 실현이고 정의의 본질은 공정성(fairness)이다. 공정하지 않은 법은 법이 아니다”란 게 그의 법 소신이기도 하다.

홍 원내대표는 13일 다른 해석으로 맞섰다. 그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총재를 ‘어느 야당 총재’라고 지칭하며 “박씨 사건은 형식적 또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국민의 기본권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며 “정부를 비판한 게 잘못이 아니라 거짓말을 퍼뜨려서 우리가 불가피하게 쓰지 않아도 될 20억 달러를 (환율 안정을 위해) 썼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재적인 한계를 넘어선 행동을 했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씨의 구속이 적절했다는 얘기다.

홍 원내대표가 말한 내재적인 한계론은 법학계에서 논란이 많은 개념이다. 연세대 김종철(법학) 교수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도덕률에 반하는 과도한 자유는 헌법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내재적인 한계론”이라며 “독일과 달리, 법률로써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을 가진 우리 헌법의 특수성상 내재적 한계를 인정하면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정애·백일현 기자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말 그대로 “법률로 통치한다”는 게 형식적 법치주의다. 법 문헌상 근거가 있으면 무조건 처벌하려는 것이다. 나치 등 독재정권이 악용했다. 그 반성으로 나온 게 실질적 법치주의다. 법적 근거가 있더라도 헌법적 정당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법치주의 개념에선, 법률을 확대해 적용하는 것은 법률에 반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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