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 심판’인 줄 알았더니 … 기초 체력장서 줄줄이 쓴 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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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시 3급 심판 강습회에서 본지 이해준 기자(左) 등 참가자들이 깃발을 손에 쥐고 터치라인을 따라 달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심판 눈 떠라!” “정신 똑바로 차려, 심판!”

K-리그 경기가 열릴 때마다 축구장에서 들려오는 서포터의 외침이다. 감독들 역시 지면 심판을 탓하기 다반사다.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깨지는 심판은 축구계의 동네북이다.

그러나 심판 없는 경기는 상상할 수 없다. 심판의 판정이 없다면 축구는 즐거운 게임이 아니라 진흙밭 전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선수와 관중을 희망과 절망으로 인도하는 그라운드의 지휘자이자 판관이다. 그래서 축구 심판을 꿈꾸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자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지난 5일부터 닷새간 서울 송파구 오금고교 등에서 열린 서울시 3급 심판 강습회에 참가했다.

“살랑살랑 깃발을 흔드는 철도원이 아닙니다!” 심판 강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부심 기를 들 때는 팔과 깃대가 일직선을 이루도록 검지를 곧게 펴서 잡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깃대가 팔과 따로 놀아 꼴이 우스워집니다.”

휘슬을 부는 데도 방법이 있었다. 가벼운 파울은 짧고 명료하게, 거친 파울은 거세고 강렬하게.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부심 훈련 중에는 사이드 스텝을 밟아가며 최종 수비수를 쫓아가다 발이 꼬여 ‘꽈당’ 넘어지기도 했다.

“심판이 경기 중에 다쳐서 교체되면 그런 망신이 또 없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강사는 냉정했다. 오프사이드를 잡아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넓게 조망할 수 있는 기자석과 달리 최종 수비수의 위치와 공이 패스되는 순간을 동시에 파악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FC 서울 서포터인 안용준(37)씨는 “눈이 서너 개가 아닌 이상 오프사이드를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는 더 이상 심판에 대해 욕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심판 강사는 “월드컵에 나가는 유능한 심판들도 오프사이드 5개 중 한 개는 오심을 한다”며 격려했다.  

심판 강습회의 가장 큰 고비는 체력 테스트다. 이론 시험은 교육을 이수한 82명 전원이 합격했지만 서울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체력 테스트에서는 19명이 고배를 마셨다. 기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85kg의 체구를 이끌고 2.8km를 정해진 시간 안에 뛰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150m를 30초에 달린 뒤 50m를 40초 동안 걷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400m 트랙 일곱 바퀴를 돌아야 체력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 두 바퀴 반을 돌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강사는 “현대 축구에서는 심판이 뛰는 거리가 10㎞를 넘나든다. 적어도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상으로 축구를 접은 뒤 심판으로 새 출발을 꿈꾸는 고교 2년생, 교내 축구대회에서 더 정확하게 심판을 보고 싶다던 체육 교사, 스포츠 캐스터를 꿈꾸는 여대생 등을 포함해 이날 체력 측정을 통과한 사람은 모두 63명. 이들은 울산에서 열리는 초등학교의 연습경기에 주심과 부심으로 세 차례씩 투입돼 최종 관문인 실기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김성호 서울시 심판협의회장은 “ 축구를 통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심판에 입문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심판이 되려면

 16세 이상 40세 미만의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대한축구협회의 정식 심판이 될 수 있다. 성별 제한은 없으며 교정 시력이 1.0을 넘으면 된다.  

3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필기테스트, 체력 측정 테스트, 실전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1년에 두 차례 선발한다.

일단 3급 심판이 된 뒤 2년 동안 30경기 이상 주·부심을 맡아 경험을 쌓으면 2급으로 승급할 수 있다. 1급을 거쳐 빠르면 5~6년 만에 국제 심판이 될 수도 있다. 국제 심판은 영문 필기시험을 보며, 회화 능력도 측정한다. 현재 국내에선 23명의 국제 심판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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