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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술병 왜 제값 안쳐주나요? - 슈퍼.주류업체 책임 떠넘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초등학교 5학년인 김성희(서울성북구장위동)군은 빈 술병으로 용돈을 마련하려던 동심이 무참히 깨졌다.아파트 베란다에 잔뜩 쌓여있던 빈병을 낑낑대며 슈퍼로 날랐으나 기대와는 딴판이었다.슈퍼주인은 빈병이 귀찮다며 짜증을 내면서 맥주병은 30원,소주병은 20원밖에 쳐줄 수 없다고 했다.아버지에게서 들은대로'맥주병은 50원,소주병은 40원'을 달라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슈퍼등에서 맥주나 소주를 구입할때 빈병 반납때 돌려받는 조건으로 지불하는 공병보증금(맥주 50원.소주 40원)이 들어있다.

그러나 슈퍼에서는 이처럼 빈 술병을 가지고 오더라도 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않고 1병에 20원씩 덜주고 있다.이때문에 상당수 소비자들은 슈퍼에 가서 공병보증금을 돌려받기를 포기하고 재활용품 분리수거함에 술병을 그냥 넣어버리는 경우가 많다.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눈뜨고 날려버리는 돈이 1천1백억원 정도 된다.

그런데도 슈퍼.주류회사는 물론 주무당국인 국세청도 빈병회수 책임을 서로 떠넘기면서 입씨름만 벌이고 있다.게다가 슈퍼들은 주류회사가 직접 회수해가지 않으면 빈병 방치도 불사하겠다고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와 자칫 빈병 대란마저 빚어질 조짐이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판매량은 1백67만㎘,소주판매량은 81만㎘.병으로 치면 맥주는 33억4천만병(5백㎖기준),소주는 24억6천만병(3백30㎖기준)으로 모두 58억병에 이른다.이중 가정용으로 판매된 물량은 30억병.이를 가게가 1병에 20원씩 덜주거나(15억병) 분리수거로 그냥 버려지는 것(15억병)을 감안하면 연간 1천1백억원의 공병보증금이 날아가는 셈이다.

하지만 슈퍼는 물론이고 소매점에 술을 대주는 주류도매상들도 갈수록 빈병 취급을 꺼린다.도매상들은 소매점에서 맥주병은 55원,소주병은 43원에 수거해 이를 다시 주류회사에 각각 63원,48원에 넘긴다.맥주병은 8원,소주병은 5원의 수수료를 중간에서 받는 것이다.그러나 이 정도 마진으로는 채산맞추기가 어렵고 수거.분류.반납에 들어가는 비용을 도매상이 부담하고 있다 보니 적자만 본다는 것이다.슈퍼업계는 이같은 주장을 하면서 최근 OB.진로쿠어스.조선맥주등 주류회사들에 더이상 빈병을 날라줄 수 없으니 직접 수거해 가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국세청 고시에는“주류제조업자는 빈병을 직접 회수.운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그런데도 공병보증금제도가 시행된 85년이래 유통업체들은 군소리 한마디 못한채 스스로 빈병을 주류회사에 날라줬다.주류회사에 밉보였다간 맥주.소주제품 공급에서 불이익받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빈병 반납을 자처해왔다.그러나 불황으로 경영난이 심해지자“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반기를 들고나온 것이다.

한국수퍼체인협회 이광종 전무는“주류회사들에 국세청 고시대로 빈병을 직접 수거해 가도록 공문을 보냈다”고 밝히고“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고 빈병반납을 거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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