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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부처님 오신 날 만난 불교.천주교.개신교 성직자 鼎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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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천주교의 평화방송이 특집을 마련했다.또 개신교에서는 잡지'기독교사상'에 축하메시지를 게재했다.지난해 불교측에서 성탄절 메시지를 보낸데 대한 화답이기도 하지만 종교간 화합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13일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천주교와 개신교 성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불교강좌에도 50여명이 모였다.우리 종교계에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화합과 관용의 작은 불씨를 지피기 위해 석지명(釋之鳴.청계사주지)스님.김경재(金敬宰.한신대교수)목사.김종수(金宗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총장)신부가 모여'부처님 오신 날'기념 정담(鼎談)을 마련했다.3개 종교단체 성직자들이 이런 계기로 한자리에 모이기는 처음이다. 편집자

▶석지명 스님=김수환(金壽煥)추기경과 강원룡(姜元龍)목사가 불교방송에

출연해 팔만대장경 전산화작업의 후원을 호소했습니다.

우리 종교계에 실로 이변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김경재 목사께서는

부처님 오신 날 축하메시지를 기고했다가 개신교내 보수적 신자들로부터

반발을 샀던 것으로 아는데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김경재 목사=종교간 화합 분위기는 사실 늦은

감이 있습니다.

지난 30여년동안 사회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종교인마저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개신교.천주교.불교등 한국의 6대 종교는 3.1운동등에서 보듯 협동과 관용의

전통이 강했잖습니까. ▶석지명=가톨릭은 체제는 보수적인데 비해

이해하려는 마음은 열려 있는 편이지 않습니까. ▶김종수 신부=최근들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배타주의에 따른

분열과 갈등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을 촉구함으로써 좀더 개방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로마교황청에서 3년전부터 부처님 오신 날에 축하 메시지를 띄우는 것도

바로 그런 인식의 변화입니다.

▶석지명=최근 종교인들의 종교호감도 조사에서 개신교 신자는

천주교에,천주교 신자는 불교에 호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불교에 배타적인 것 같은데 金목사께서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메시지를 실었더군요. ▶김경재=나 혼자만의 의견이거나 돌출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전철등에서 극단적.배타적으로 선교활동을 펴고 있는 신도들을 개신교의

전부인양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하느님을 소리쳐 남에게'외치지'않는 개신교 신자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아무리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도 거슬러 올라가면 개종이 4대 조상

이전으로까지 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불교쪽에서 먼저 마음을 열었습니다.지난 크리스마스때 화계사에 성탄절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더군요. 그에 대한 최소한의 화답이었고 또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였습니다.

그후 항의도 많았지만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다는 소수의 반응에

더 의미를 부여할 생각입니다.자그마한 행위가 일부 개신교의 독선적인 면을

시정해 나가는 불씨가 됐으면 합니다.

▶석지명=천주교가 상대적으로 불교에 호감을 갖게 된 이유는 뭡니까.

▶김종수=천주교의 심성 안에 불교가 많이 내재돼 있습니다.수행방법과

예배형태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모든 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우리 문화에 어느 정도 동화됐기

때문이지요.우리 모두는 우선 한국인이지 않습니까. ▶석지명=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신을 강조하는데,그러다 보면 독선이 강할지 모르지만

불교에서는 선(善)뿐 아니라 악(惡)까지도 포용합니다.

▶김경재=세계적으로 가톨릭은 60년대,개신교는 70년대부터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어요.학자나 성직자의 요구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다움을 위해서였지요. 인간은 문화적.역사적으로 상대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성을 통해 절대를 보는 것이 종교입니다.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깨닫는다는 의식이 보편적으로 무르익고 있습니다.

불교는 불교다워야하고 기독교는 기독교다워야 하되 열린 마음으로 서로

도우면서 진리와 구원에 이르는 지평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삶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통신.정보등 모든 면에서 문화의 다양성이 큰 축복으로 받아들여지는 마당에

탄력적 사고를 하지 못하면 종교적 차원을 떠나서도 고통받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지요.종교도 이제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석지명=부처님은 한가지 법문만 간단히 내놓지 않고 왜 8만4천 법문이나

내놓았을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사람의 취향과 개성이 달라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간의 대화도 그런 차원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수=절대적인 존재는 하나지만 그것을 찾는 길은

상대적입니다.여기에서 여러가지 종교가 가능하지요.진리를 찾는데 대화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서구사회에 불교가 전파되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이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그러면 서구사회의 기존

종교측에서는 두려움과 함께'나의 것을 잃는 이유는 뭘까'라는 반성이 따를

것입니다.가톨릭이 역사적으로 쇄신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반성이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개신교를 낳은 종교개혁을 계기로 가톨릭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이렇듯 다른 종교와의 만남은 오히려 신앙을 풍성하게 합니다.

▶석지명=개신교나 천주교가 사회적으로 펼치는 사랑의 힘은 참으로

놀랍습니다.그런 점에서는 불교가 부끄러움도 느낍니다.

▶김경재=불교는 자비심을 실천해왔고 지금도 열심입니다.평생 모은 재산을

선행을 위해 공양하는 불자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지요. 경전의 내용은

학자들이 비교 연구하면 됩니다.그런 것을 두고 일반 신자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다른 종교 신자들과 절대로 다투지 않습니다.서로 자기

집 샘물 맛에 만족하면서 이웃집 샘물의 맛도 즐기지요. 개신교가 1백20년의

짧은 기간에,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왜 배타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는가는 우리 모두 반성해야할 문제입니다.

불교를 일반 대중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 팔만대장경 번역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지만 불교전파후

1천5백년동안 백성들은 한자로 된 경전에 접근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성경이 한글로 번역돼 소개되니까 접근이 쉬웠고 그 안에

무궁무진한 진리가 꿈틀대고 있었으니까요. 또 다른 한편 불교에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은 왜 보느냐는 말이 있지요. 개신교의

많은 신자들이 진리인 달은 보지 않고 진리에 이르는 방법인 성경을 진리인양

믿고 있습니다.

이런 그릇된 성경관 때문에 개신교가 배타적이고 더이상 성숙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묶어버린 셈이 됐는지도 모르지요. ▶석지명=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를 해탈이라고 합니다.불교나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가능하겠지요. ▶김경재=몇년전

변선환(邊鮮煥.작고)감리교신학대학 교수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돼 파문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교리주의자들이 말한 구원과 邊교수의 구원은 의미에서

달랐습니다.구원에는 세가지 체험이 함축돼야 한다고 봅니다.먼저

아집(我執)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돼야 하며 어떤 형태로든 생사(生死)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며,이 두가지가 이뤄지면 자비든 사랑이든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가지가 없으면 종교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구원이 아닙니다.

▶김종수=과거에는 다른 종교를 통해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새로운 이해는 그런 차원을 뛰어 넘어야지요. 그렇다고 각 종교의

고유성을 털어내라는 뜻은 아닙니다.저는 타종교의 구원관(救援觀)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진리로 가는 길이 여럿임을 깨닫습니다.특히 불자들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김경재=미국의 존 시크 교수가 쓴'신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책도

이런 종교간 갈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불교로 불리든,천주교로

불리든 그것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모든 종교가 다

똑같다는 인식은 경계해야 합니다.진리는 하나일지 몰라도 역사속에 사는

개인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위대한 전통을 서로가 배워야 하지요.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불교적 요소가 성경에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할 뿐입니다.성경을

읽다보면 불교에서 깨치지 못한 것을 배울 수 있어 더욱 풍성해져요.

▶석지명=종교인들간에 손잡고 나서는 방법으로는 환경운동등이 있을

것입니다.

▶김종수=사회운동.자선활동.민족동질성 회복등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경재=개신교와 가톨릭의 만남도 30년전에는

불가능했습니다.그후 군사정권아래서 노동자.빈민과 함께 하는 경험을

통하다보니 가까워지게 되었지요.종교는 생명을 살리고 생명답게 하는 일에

중점을 둬야 할 것같습니다.

생명이 있은 후에 종교도 있는 것입니다.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 고양하는

생명운동에 연대하고 참여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석지명=이왕 부처님 오신날이니 신부님과 목사님께서 덕담을 한마디씩

해주시지요. ▶김종수=사회운동등을 통한 만남 못지 않게 종교인들간의

개인적 만남을 많이 가져야겠습니다.법정(法頂)스님과 장익(張益)주교의

만남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어요.6개 종단의 북한돕기보다 더 신선한

온기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김경재=그런 만남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인들 뿐만 아닙니다.모든 국민이 그런 화합을 원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불교방송 만이 아니라 다른 방송에서도 그런 만남을

주선해야 합니다.

▶석지명=두분께서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인간사회에는 조직이 있고,조직에는 음모가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인간,사회를 위해 종교인들은 어떤 점을 보여야 할지요.

▶김경재=혼미를 해결하는 길은 뿌리에서부터 접근해야 합니다.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癡)중에서 탐심(貪心)을 버리는 일이지요.모든 종교인들이

앞서서 솔선수범해 나가는 것이 한국의 병폐 해결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김종수=이 사회가 건전해지려면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성경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지혜의 시초라고 돼

있습니다.종교는 두려움을 압니다.

두려움을 깨쳐주고 원칙을 존중하도록 사회 분위기를 유도해야

합니다.종교계의 물질적 도움에는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두려움을

부각시키고 원칙과 법을 세우는데는 할일이 많으리라 봅니다. 정리=정명진

기자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14일 오전10시 서울종로구견지동 조계사.02-733-4749.

▶고려연등의식재연(다례부문)=18일 오후1시 덕수궁.02-3672-4030.

▶참나청소년 통일환경문화예술대전=18일 오전9시30분

보라매공원.02-747-5787. ▶불교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 세미나=24일

오후2시 조계사내 불교회관 1층.02-720-6618.

<사진설명>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13일 신자들이 조계사를 찾아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최근 조성되고 있는 종교간 화합분위기가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방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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