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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금리 0’시대 … 울고 웃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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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양천구의 김영순(70)씨는 떨어지는 금리에 한숨을 짓는다. 지난해 갖고 있던 주식과 펀드가 반 토막이 났다. 게다가 은행에 넣어뒀던 예금이 곧 만기가 되는데 금리마저 떨어지고 있다. 연 7~8%에 달했던 고금리 예금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남편이 퇴직한 후 주식투자와 이자수입으로 살아왔는데 갈수록 사정이 어렵다.

#2년 전 변동금리로 1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회사원 박준석(41·서울 강북구 미아동)씨는 요즘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대출금리의 기준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엔 대출금리가 연 8% 이상으로 뛰었지만, 이달 말 금리가 조정되면 5%대로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9일 기준금리를 연 2.5%로 내리면서 이자소득으로 살아가는 가정과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명암이 엇갈린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신한은행은 1년 만기 정기예금을 연 4.5%로 내렸고, 우리은행은 14일부터 연 4.1%로 인하할 예정이다. 1억원을 예금하면 1년 후에 받을 수 있는 이자는 410만~450만원. 이자소득세(15.4%)를 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것은 347만~381만원이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1%,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3.5%다. 실질금리가 ‘제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자로 살긴 어려워=이자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단 절세 상품에 가입하는 게 좋다. 만 60세 이상의 고령자는 1인당 3000만원까지 비과세되는 생계형 저축을 활용해야 한다. 다음엔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에서 가입할 수 있는 정기예탁금이다. 1인당 3000만원 한도에서 1.4%의 농어촌특별세만 내면 된다. 마지막엔 1인당 1000만원(60세 이상은 30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는 세금우대(9.5%)를 활용하는 것이다.

금리가 떨어지는 시기에는 좋은 조건의 상품이 나왔을 때 장기로 가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김생수 외환은행 목동지점 PB팀장은 “은행들이 추가로 후순위채권이나 하이브리드채권을 발행한다면 이를 매입하는 것이 좋겠다”며 “은행 직원을 통해 이미 발행된 것을 사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변동금리 대출 유리해져=대출금리가 오르는 시기엔 고정금리가 유리하고, 반대로 하락하는 때엔 변동금리 대출이 낫다. 외환은행 김 팀장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낮출 공산이 크다”며 “연 7% 이상의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이라면 변동형으로 갈아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신규 대출을 받기는 전보다 까다로워졌다. 따라서 목돈이 생겼다고 해서 기존의 대출금을 바로 갚는 것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미경 하나은행 성북동 지점장은 “대출을 무작정 갚았다가 은행들의 강화된 심사 기준에 따라 새로 대출을 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며 “일정 부분을 단기로 운용하다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질금리 제로의 효과=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정부와 한은은 저금리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이자와 연금에 의존하고 있는 고령 퇴직자들의 소득이 감소하는 게 대표적이다. 한정된 수입으로 버텨야 하는 이들이 저금리 시대에 소비를 늘리기는 기대할 수 없다. 일본에서도 제로금리에 가깝던 2000년 초 저축을 더 늘려 이자 총액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많아져 소비 진작에 나선 정책당국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른바 ‘금리의 역설’이다. 이 경우 소비는 더 위축된다. 금리를 내려도 실제 효과는 금리 인상과 비슷하게 나타나는 셈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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