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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시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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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35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아수라장이 된 가자 지구의 중심 도시 가자 시티는 고대로부터 온갖 전란에 시달려 왔다. 북아프리카와 중근동, 지중해를 잇는 교차로이기 때문이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가자 시티는 고대 가나안 서남부(지금의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의 해안지대)를 지배하던 블레셋인이 세운 다섯 개의 도시국가 중 하나다. 기원전 13세기 이곳에 정착한 블레셋인은 고대 유대 국가와 끝없이 싸웠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도 그런 분쟁의 한 부분이다. 삼손이 데릴라의 꾐에 빠져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과 시력을 잃고 잡혀간 곳이 가자 시티다. 여호와에게 기도해 힘을 다시 얻은 삼손이 이교도 사원인 다곤 신전의 돌기둥을 무너뜨리고 숨진 곳도 이곳이다. 삼손뿐 아니라 사무엘·사울·다윗 등 유대 영웅들이 블레셋인과 싸웠다.

아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 등 중근동에 거대 제국을 이룬 나라들은 한결같이 가자 시티를 점령한 뒤 이집트 정복에 나섰다.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던 알렉산더 대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원전 332년 이 도시와 악연을 맺었다. 바티스라는 환관의 지휘 아래 이 도시 주민들은 두 달간이나 포위공격을 버티면서 거의 모든 성인 남자가 전사할 때까지 성문을 열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도시 점령 뒤 사로잡은 여자와 어린아이를 노예로 팔아 버렸다.

십자군 전쟁 중에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도 1191년 이 도시를 일시 점령했다. 가자 시티에 발을 디딘 침략 세력 중에는 몽고도 있었다.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쿠빌라이의 동생인 훌라구가 서남아 정복에 나서면서 1260년 세력을 뻗친 것이다. 그는 이곳에 1000명의 병사를 주둔시켰다. 훌라구는 이집트 정복을 준비했다. 하지만 본국의 최고 지도자인 몽케 칸이 죽자 후계자 경쟁에 참가하기 위해 일부 병력만 남기고 철군하는 바람에 몽고의 서진은 이곳에서 끝났다.

나폴레옹도 이집트 원정 도중이던 1799년 이 도시를 점령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르던 1917년 영국군은 오스만 튀르크와 세 차례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이곳을 점령했다.

워낙 전란에 시달리다 보니 이 도시에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별로 없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게 7세기에 처음 들어선 대(大)모스크다. 당시 이 지역을 장악한 이슬람 세력은 고대 이교도들의 다곤 신전 자리에 모스크를 지었다.

중세에 이곳을 점령한 십자군은 이 모스크에 세례 요한에게 봉헌하는 교회를 지었지만 무슬림은 이곳을 수복한 뒤 모스크를 원상 회복시켰다. 1260년 몽고군에 의해 파괴됐지만 또 다시 재건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이곳에 주둔한 오스만 튀르크군에 대대적인 포격을 가하는 바람에 모스크는 크게 손상됐다. 하지만 1925년 재건돼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가자 시티의 역사는 어떠한 무력도 인간의 믿음을 억누를 수 없고, 군사력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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