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있는’ 한국 춘란들의 경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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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06면

2008년을 빛낸 최고의 한국 춘란들. 1 소심 ‘선광화’ 한국난대전(한국난연합회, 충북 청주) 대상

난 선물의 달은 1월이지만 난의 가치를 가리는 경연과 축제의 장은 춘삼월이다. 고가의 난으로 인식되어 있는 한국 춘란(春蘭)이 꽃을 피우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120여 개에 달하는 국내 난 전시회가 대부분 이때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4개의 사단법인과 1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최하는 5대 전국대회는 최고의 난들이 각축을 벌이는 장이다.

- 국내 난 전시회와 수상작들

무명품보다 명명품
최고의 난을 가리는 기준은 일단 해당 난이 가지고 있는 자질, 즉 화형·화색·화육 등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화형은 원형에 가까울수록, 화색은 짙을수록, 화육은 두터울수록 좋다. 하지만 이것이 전시회의 대상을 담보하진 않는다.난, 그중에서도 한국 춘란은 명명품(銘名品)과 무명품(無名品)으로 나뉜다. 이는 말 그대로 이름이 있는 난과 그렇지 않은 난을 이야기하는데, 지난해 각종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복색화 ‘태극선’의 경우가 대표적인 명명품 사례다.

무명품이란 아직 이름 지어지지 않은, 다시 말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난을 말한다. 무명품은 늘 전시회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대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검증(그 모양대로 계속 잘 자랄지, 번식은 잘 될지)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차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5대 전국대회에서는 모두 명명품이 대상을 수상했다.

그렇다면 무명품의 가치가 명명품보다 떨어지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다. 명명품은 대부분 그 가치에 따라 보편타당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태극선’의 경우 1촉(포기)에 200만~300만원으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황화 ‘황비’, 원판소심 ‘송옥’, 색설화 ‘도춘’, 두화 ‘앵두’ 등 다른 명명품들도 100만~250만원대에서 가격이 고정돼 있다. 하지만 현재보다 미래를 보고 투자할 수밖에 없는 무명품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난 후에는 명명품이 되고 또 일정한 가격대를 이룬다.

2 복색화 ‘태극선’ 한국난명품전국대회(한국난문화협회, 전북 전주) 대상 3 복색화 ‘태극선’ 대한민국난명품대제전(전남 함평군) 대상 4 홍화 ‘수사’ 한춘대전(한국춘란회, 경기 과천) 대상 5 색설황화 ‘황비’ 대한민국난대전(대한민국자생란협회, 부산) 대상. 사진 제공 월간 ‘난세계’

價보다 藝
난 전시회 수상작과 가격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하다. 수상 여부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릴 수 있고, 그 반대로 가격 여부가 수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분명 무명품들이 대상을 수상해 몇 천만원, 몇 억원을 호가하며 해외로 판매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례가 드물다. 난계가 1990년대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안정적 취미생활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미 검증이 끝나 가격이 안정된 명명품이 관심을 받는 추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예술품처럼 난 또한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금전적 가치에 앞선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한 전국대회에서의 에피소드는 이에 대한 방증이다. 당시 2개의 꽃을 피운 ‘태극선’과 5개의 꽃을 피운 ‘태극선’이 동시에 출품되어 자웅을 겨뤘다. 가격으로는 촉 수로 보나 꽃 수로 보나 후자가 단연 앞선다. 하지만 대상의 영예는 전자가 안았고, 후자는 차상을 수상했다. 당시 대부분 심사위원은 본연의 예(藝), 즉 해당 난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내리며 2개의 꽃에 손을 들어 주었다.

지금 1월은 한국 춘란이 단단한 꽃망울을 매단 채 겨울을 나는 시기다.
이들의 화려한 변신을 보려면 오는 3월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난 전시회에 한번 찾아가 볼 일이다. 활짝 핀 난꽃의 아름다움에, 그리고 난을 기르는 사람들의 따뜻함에 흠뻑 매료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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