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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소심한 ‘회사형 인간’분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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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나경 옮김
464쪽, 1만2800원

 바람 많이 불기로 소문난 미국 시카고의 한 광고회사에 불어닥친 정리 해고 칼바람을 다룬 소설이다. 이른바 닷컴 산업의 호황 속에 큰 어려움 없이 많은 보수를 챙겨 가던 카피라이터들은 거품이 꺼지면서 하루 아침에 파리 목숨으로 전락한다. 권태에 이를 갈면서도 작은 성취에 일희일비하던 신종 회사형 인간, ‘호모 오피스쿠스’들은 고용 위기가 닥치자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그런 소심함은 의자 사건을 통해 전모를 드러낸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은 마흔여덟 살의 크리스는 진작에 은퇴한 동료 어니가 쓰던 의자를 회사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한 게 괘씸죄에 걸렸다고 억측한다. 정작 제발 저린 건 평소 낙천적인 성격의 마샤다. 마샤는 또다른 해고자 톰의 의자를 가져다 사용 중이었던 것이다. 사소한 거짓말이 켕겨 의자에 휘둘리는 형국이다.

잔인한 소리 같지만, 사람마다 제각각인 해고에 대한 반응이 이채롭다. 톰은 62층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내던져 깨트리려 했으나 사무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을까 싶어 포기한다. 해고를 통보한 상사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크리스는 다음날도 버젓이 출근해 다른 회사에 보낼 자신의 이력서를 복사한다. 회사에 충성할 만큼 했으니 그 정도 편의는 제공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소설은 흡인력 있는 서사 없이, 2001년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진 정리 해고 에피소드들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트콤식 유머, 잔재미를 추구한다면 도전해 볼 만 하다. 직장 때문에 울고 웃는 호모 오피스쿠스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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