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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많이 먹어 살찐다? 문제는 식탁이 아닌 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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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빈곤한 만찬
피에르 베일 지음, 양영란 옮김
궁리, 344쪽, 1만5000원

  흥미롭게도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원제와 번역 제목 ‘사이’에 있는 듯하다. 국내판 제목은 『빈곤한 만찬』이지만 원제는 ‘미래에는 (모두가) 비만해진다’는 뜻의 『Tous Gros Demain』이다. 원제가 앞으로 인류가 모두 뚱뚱해질 것이라는 경고에 초점을 맞췄다면, ‘빈곤한 만찬’이란 제목은 겉으론 풍성해졌지만 좋은 영양소(칼로리가 아니다!) 가 빈약해지고 균형이 깨진 현대인들의 식탁에 주목했다. 그저 빈곤하다기 보다는 ‘위험한 식탁’이라는 게 맞겠다. 음식에 관한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데 성인은 물론 어린이까지 뚱뚱해지고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프랑스 농공학자이며 소비자운동가인 저자는 이런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왜 이렇게 된 걸까? 현대인들이 과거보다 단지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기 때문일까?

생활패턴의 변화가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저자의 손가락은 수퍼마켓 넘어 ‘들판’을 가리킨다. 그곳을 넘어 ‘가축의 여물통’까지 보란다. 비만을 비롯한 현대인들의 각종 질병이 거기서부터 온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면, ‘왜곡된 먹이사슬’이 문제다.

지난 수 십년간 급격히 바뀐 현대인들의 밥상은 ‘인류 최초의 양식이며 순수의 상징’인 모유의 성분마저 바꿔놓았다. 모유에 함유된 불포화지방산중 심장혈관계통 질병과 당뇨병, 심지어 알츠하이머 등 많은 질병에 효험이 있다는 오메가3는 급격히 줄고, 일명 ‘지방폭탄’이라고 불리는 오메가6 만 기형적으로 늘어났다. 40년 전 모유에 함유된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비율은 5대 1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비율이 20대 1에서 25대 1까지 차이 난다. 현대인들이 오메가6가 많이 함유된 가공식품을 과다하게 섭취해 “갓난 아기들의 비만은 엄마 뱃속에서 이미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메가6의 과잉은 가공식품 뿐만 아니라 소, 닭, 돼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육류의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비율은 40년 전 2대 1에서 현재 10대 1까지 벌어졌다. 왜일까. 가축들의 식단이 들판의 풀에서 오메가 6가 많은 ‘옥수수와 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몸에서 나오는 모유의 성분이 변한 것은 들판에서 더는 좋은 풀이 자라지 않으며, 가축들에게는 더는 좋은 씨앗을 먹이지 않고, 인간의 식사가 더는 영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201쪽)

저자는 오메가3가 과학적으로 효능도 입증되고 매우 중요한데도 왜 그 악명 높은 콜레스테롤만큼 알려지지 않은지도 설명해준다. 제약회사들의 상업 논리 때문이다. 콜레스테롤 억제 약품은 개발했지만 오메가3는 인위적으로 분리해서 농축·정제해 약품으로 개발할 수 없었다. ‘식품’으로 섭취해야 하는 오메가3의 중요성을 말하느니, 콜레스테롤 공포를 조장하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것이다.

“생태학의 균형이 바로 영향의 균형이다.” 그는 들판(생태계)을 바꾸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식료품을 살 때 ‘싼 가격’에만 집착하는 대신 돋보기를 들고라도 성분표시를 꼼꼼하게 읽으라고 조언한다. 대량생산에 최저가 마케팅이 생태계 균형을 깨뜨렸다는 것을 직시하라는 얘기다.

그는 그리스 농가에서 생산한 달걀과 미국 워싱턴 수퍼의 달걀 성분이 달랐다는 실험을 인용하면서 거듭 강조한다. “달걀이라고 다 같은 달걀이 아니다”고. 이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엔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정도다. 먹을거리와, 영양학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이렇듯 쉽고 재미있게 담아낸 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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