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비경>페루 잉카유적 - 잉카의 후예들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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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여섯살 남짓 됐을까.어린 소년이 수풀사이에서 뛰어나와 손을 벌렸다.다 해어진 옷에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남아 있던 1달러짜리를 털어주자 소년은 밝게 미소지으며 숲속으로 달려갔다.잠시후 다시 돌아온 소년의 손에는 코카잎등 야생초가 한묶음 가득했다.뭐가 그리 고마운지 소년이 연신 손을 흔들어대며 수풀사이로 멀어져가자 눈시울이 불거졌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잉카인들이 스페인의 피사로에게 무너진 것은 1532년.1821년 독립을 이룰 때까지 압정에 시달려야 했다.이어진 영토분쟁과 군사정권(68년),그리고 현재의 후지모리정권. 스페인의 혼혈정책으로 메스티조(혼혈)가 페루국민의 40%를 넘어서고 케추아족이 대부분인 인디오들은 도시로 이주해갔지만 여전히 잉카의 후예들은 안데스산맥에서 옛 풍습을 간직한 채 힘겨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올리안타이탐보(민속촌).피사크.우루밤바등 마을을 이뤄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기도 하고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에 흩어져 암염(소금)채취,알파카.염소등을 방목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10명 안팎의 가족이 염소등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허름한 집 한칸 없이 동굴 속에서 사는 원주민들도 적지 않다.민속촌에 관광버스가 들어서면 어김없이 기념품을 손에 가득 쥔 원주민들이 몰려든다.알파카로 곱게 짜여진 미니가방이 고작 5백원정도.서너살짜리 아이들까지 동원하지만 한 가족의 수입은 한달에 1백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사진설명>

열차가 우루밤바역에 들어서자 잉카 원주민들이 알파카로 만든 수제품을 들어보이며 관광객들에게 애타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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