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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 심어주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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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004년 미당문학상을 받은 시인 김기택(52·사진) 씨가 그림책 『꼬부랑꼬부랑 할머니』(비룡소)를 펴냈다. 김 씨가 200자 원고지 30매 정도 분량의 동화를 썼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염혜원씨가 질박한 느낌의 판화를 보탰다.

김씨의 시편들은 차가우리만치 냉정한 시선으로 소음, 갑작스러운 사고 등 일상의 수면 아래 잠재해 있는 폭력성을 세밀하게 잡아낸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사람들의 습관이나 생활방식은 그런 폭력에 맞서 싸우다 변형된 모습으로 그려졌다. 자연스레 그의 시는 서정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그가 그림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사실 이번 그림책도 밝지만은 않은 동시 ‘꼬부랑 할머니’에서 출발했다.

“마음을 다해 기역자로 허리 굽혀/인사를 하고 난 후/허리가 펴지지 않는다./아무리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도/절이 다 끝나지 않는다./인사받는 사람이 가고 없어도/개나 고양이, 쓰레기통 앞에서도/절을 그칠 수가 없다./밥 먹을 때도 똥눌 때도 잠잘 때도/온몸이 하루 종일이 절이다.”

김 씨는 대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2007년 가을 3개월간 미국 서부의 UC버클리에 머물렀다. 그는 “기후가 온화한 그곳에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인지 밝지 않은 시를 낙천적인 분위기의 동화로 고쳐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동시 속 할머니는 동화에서는 병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 여러 달 치성을 드린다. 결국 허리가 굽어 펴지지 않게 됐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완쾌를 자랑하러 집을 나선다. 시골길에서 만난 꼬마들이 “왜 어린이에게 절하시냐”라고 묻자 할머니는 “종달새 같은 너희 목소리에 할아버지 병이 나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동화는 할머니가 코스모스·벼·허수아비·가을바람 등을 차례로 만나 같은 내용의 문답을 주고 받는 식이다.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교훈을 담았다.

그는 “30대 후반에 얻은 딸이 자라는 걸 지켜보며 아이 특유의 상상력, 놀이에 대한 집중력을 눈여겨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장·단어의 반복, 아이들이 좋아하는 의성어·의태어를 많이 집어 넣은 것도 ‘육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에게 “최승호 씨 등 시인들의 어린이물 창작이 유행 같다”라고 물었다. 김 씨는 “자신에게 맞는다면 굳이 상상력의 문을 닫아 걸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윤동주·박목월도 따로 구분하지 않았을 뿐이지 동시를 더러 썼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러나 “내 본업은 역시 어른 독자를 위한 시”라며 “몇몇 대학에서 강의하는데 방학중인 요즘은 하루 종일 책 읽고 시 쓰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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