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리 내리려고 물가 희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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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정부일각의 통화증발을 통한 금리인하 추진움직임이 주목을 끌고 있다.재경원 차관이 금리를 6%대로 낮춰가야 한다는 발언에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이 해외차입의 증대를 통한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이같은 일련의 발언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화증발을 통한 금리인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것으로 정부가 여론을 떠보는 작업을 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우리도 외국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금리가 한자리수로 내려가야 한다는 기본방향에는 동의한다.그렇지만 물가를 희생시키는 인위적인 수단의 동원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정부의 금리인하추진에 대해 당장 중앙은행도 그 효과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특히 통화증발은 그것이 국내든 해외부문에서든 너무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보.삼미 및 진로같은 대기업그룹의 연쇄부도로 시중 자금사정이 극도로 경색돼 있어 기업부담을 덜어주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금리가 내려가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본말이 전도돼 있다.실세금리가 내려가자면 장기간 물가가 안정돼야 하고 만성적인 초과자금수요가 해소돼야 한다.그러자면 성장률 자체가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안정될 필요가 있다.동시에 금융산업개혁과 합리화를 통해 금융조달비용을 줄이고 대출여력을 늘려야 한다.

이같은 노력은 안하고 어느날 갑자기 물가에 별 영향이 없어 보이니 통화를 늘려 금리를 내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부가 당면한 딜레마를 이해한다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강경식(姜慶植)부총리는 취임한지 50여일간 줄곧 성장률이 다소 하락해도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이번 정부가 추진하려는 금리인하방식은 이같은 姜부총리의 소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당장 사정이 어려워도 물가안정을 지속하고 기업의 투자수요도 조정해 기업과 금융기관의 합리화를 꾀하는 것이 중장기적인 금리인하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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