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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人三脚 경기 하듯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5호 35면

새해 벽두 저 멀리 남극에서 모처럼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44)씨가 2일 오후 3시50분(현지시간)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매시프(4897m) 등정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의 7대륙 최고봉 완등 기록이란다.

김씨는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를 혼자 등반하던 중 동상으로 인해 양손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산악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장애였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고 7개 대륙 최고봉 완등 도전에 나선다. 97년 유럽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남미 아콩카과(6959m), 북미 매킨리(6194m), 호주 코지어스코(2228m), 아시아 에베레스트(8848m)를 차례로 등정해 왔고 12년 만에 마지막 고지를 점령한 것이다.

그의 소식을 들으며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4)양이 생각난 것은 ‘손가락-장애’라는 연상작용 때문인지 모르겠다. 2005년 4월 ‘장애인의 날 기념 금강산 통일기행’에서 보았던 이양의 모습은 잊히질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이 양손에 2개씩뿐이고 무릎 이하의 다리도 없지만 그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북한 세관원이 그의 손을 보고 놀라 “손가락이 어케 된 겁네까”라고 물었을 때도 이양은 북한 사투리를 흉내 내 “태어날 때부터 이렇습네다”라며 태연히 두 개뿐인 한쪽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였다. 지난달 군복을 벗고 복귀한 프로게이머 임요한 선수가 한 인터뷰에서 “희아씨를 최근 한 시상식에서 만났는데 ‘없는 것에 슬퍼하고 아쉬워하지 말고 남아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한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사소한 부분에 좌절하는 게 창피한 것이다.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 걸 보았다. 참으로 여러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가씨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김씨나 이양은 결코 혼자서는 그렇게 꿈을 이루지도, 남들을 감동시킬 성공 신화를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김씨의 경우 산에 오를 때 스틱이나 아이스 바일 같은 장비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양말이나 등산화를 신고 끈을 매는 일은 대원이나 셰르파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양도 항상 그의 곁엔 어머니 우갑선씨가 있다. 2005년 통일기행 때는 자원봉사자가 이양을 업고 수 ㎞의 산길을 올라 그에게 금강산 흙을 밟아볼 기회를 주었다.

10일 장애인 권리에 관한 협약이 발효된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국민 36%만이 알고 있을 정도니 이 협약은 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2006년 12월 유엔에서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돼 만들어진 이 협약은 지난해 12월 2일 우리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처리됐다.

그 자신 시각장애인인 연세대 이익섭(사회복지학) 교수는 “장애인복지 분야의 후진국이나 다름없던 우리나라가 이런 높은 수준의 법을 2개나 한꺼번에 갖게 된 것은 사회의식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라며 “이 법들이 종이호랑이가 되지 않도록 효율적인 감시·감독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 법들에 상충되는 수십 개의 법령 개정이 필요한 지경이다.

새해엔 김씨의 신발끈을 매어주는, 이양을 해외공연에 데리고 다녀주는 비장애인의 역할을 함께 나누어 보자. 동정이나 희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도전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을 생각해 보라. 이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이인삼각 경기장이다.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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