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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제 딸이 웃지 않은 동시는 버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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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네 번째 『말놀이 동시집』(비룡소)을 펴낸 최승호(55·사진) 시인을 만났다. 성인 독자들이라면 “그 최승호 시인이냐”며 물을 법도 하다. ‘그 최승호’ 맞다. 1983년 출간된 첫 시집 『대설주의보』이후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고비』 등 문제작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휩쓴 시인 최승호다.

이제 그는 베스트셀러 동시작가로도 통한다. 2005년 첫 권이 나온 『말놀이 동시집』이 10만 부 넘게 팔렸다. 인기 비결을 시인에게 물었다. 속뜻이 생각보다 깊었다.

#글자에 뜻만 있나

그는 “글자엔 소리와 모양도 있다”고 설명했다. 당연한 상식. 그런데 그동안 우리 동시는 글자에 마치 뜻만 있는 듯, 뜻만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리의 재미를 앞세웠다. 이런 식이다. “도룡뇽 노래를 만들었어요/도레미파솔라시도/들어 보세요/도롱뇽/레롱뇽/미롱뇽/파롱뇽/솔롱뇽/라롱뇽/시롱뇽/도롱뇽”(‘도롱뇽’전문)

소리로 운도 맞췄다. “오소리가 다닌/오솔길을/오늘은 내가 걸어가네/오솔길 옆/오리나무/오솔길 옆/오갈피나무”(‘오솔길’중) 뜻이 어디로 튈지는 작가도 다 지어봐야 안단다.

글자의 모양을 활용한 형태시도 시도했다. 글자 ‘응’의 ‘ㅇ’안에 또 ‘응’을 쓰고, 그 ‘응’의 ‘ㅇ’안에 또 ‘응’을 쓴 시 ‘메아리’. 점점 작아져 사라지는 메아리가 글자 속에서 보인다. 왜가리 그림을 덧댄 글자 ‘왜’를 적어둔 시 ‘왜가리’(그림 참조)도 형태시의 하나다. 

#타악기 리듬이 대세다

그의 시 리듬은 빠르다. “쥐다/쥐 났어/4번 쥐 다리에 쥐 났어//쥐도 쥐 나냐?”(‘쥐’중) 에서처럼 문장을 짧게 쪼개 쓴 덕이다.

이를 두고 그는 “타악기의 리듬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쿵쿵쿵쿵’ 뛰는 심장도 타악기 아니냐”면서 “타악기의 리듬은 심장을 즐겁게 뛰게 만들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마음을 현악기에 비유한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도 이젠 옛말”이라는 그.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노바디’‘미쳤어’ 등의 후크송도 모두 짧은 타악기 리듬을 활용해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

『말놀이 동시집 4』에 실린 시 ‘왜가리’. 이 그림글자가 시의 전문(全文)이다.

그의 동시집이 성공을 거둔 이후 신현림·안도현·도종환 등 기성시인들의 동시집 출간이 줄을 이었다. 통과의례처럼 “유명 시인을 앞세운 상업적 기획”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시 세계를 갖고 있는 시인들이 동시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면 아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의 건반 수가 많아질 것”이란 이유에서 기성시인들의 참여를 환영했다.

단지 그가 신경 쓰는 부분은 “따분한 시, 교훈적인 시로 아이들을 지겹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난’처럼, ‘놀이’처럼 아이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자는 것이 그가 동시를 쓰는 목표다. 그래서 그의 동시는 중학교 1학년인 그의 딸 여래의 검열을 거친다.

“딸이 안 웃으면 몰고예요. 아이를 웃기는 것. 그것보다 큰 가치와 보람은 없을 겁니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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