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借名 무죄 파장 - 실명제 위반으로 처벌못해 보완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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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이 17일 全.盧사건 상고심에서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 총회장.이경훈(李景勳)전대우사장의 실명제위반과 관련,무죄를 선고함으로써 합의차명에 대한 시비에 최종 판가름이 났다.은행창구에서 실명확인절차만 제대로 밟았다면 차명을 통한

돈세탁은 처벌이 불가능해진 셈이다.

이날 대법원은 지난해 12월16일 서울고법이 이 사안에 대해 내린 무죄선고의 논리를 그대로 인정했다.

정태수.이경훈씨는 노태우씨의 비자금을 마치 한보나 대우그룹의 자금인 것처럼 차명으로 거래하며 돈세탁을 해준 혐의로 검찰에 의해 실명제 업무방해혐의로 기소됐었다.

특히 정태수총회장은 실명제 시행직후인 지난 93년9월 동화은행에 가명으로 들어있던 盧씨의 비자금 5백99억원을 실명전환해 당진제철소 건설자금으로 가져다 쓰면서 연 8.5%의 이자를 주기까지 했다.

현행'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명령'은 금융기관 직원들만을 처벌대상으로 하고 있어 예금자를 걸어 처벌할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검찰은 鄭.李씨가 차명예금을 함으로써 실명확인을 해야하는 금융기관 업무를 방해한 죄로 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법원판결이 차명거래를'무죄'로 인정함에 따라 고객이나 금융기관 양측에서 모두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커졌다.고객들의 차명거래는 물론이고 수신경쟁이 치열한 금융기관들 스스로 차명거래를 적극적으로 알선하고 나설 소지도 커졌다.

은행감독원 관계자는“현재 정부에서 추진중인 실명제 대체입법 과정에서 법원 판결을 감안한 보완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차명제를 막으려면 궁극적으로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가 병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다른 선진국들도 실명제 자체로 차명예금을 차단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결국 세금을 통해 차명거래에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번 판결에서 재삼 확인된 셈이다. 〈손병수.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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